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말 이상한 영화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한 단어로 이 영화를 표현하자면 '로마 홍보 영화' 정도 되겠다.
오랜만에 영화를 보려고 네이버 시리즈 온에서 무료 영화 중 평점이 높은 영화를 골랐는데 이건 뭐 호불호가 너무나 확실하게 갈리는 영화다.
로맨스 No, 개연성 No.
그저 코미디적인 요소와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전개만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 코미디가 나의 정서와는 잘 맞지 않았다. 한 번쯤 꿈꾸어봤을 일탈을 로마라는 도시에서 보여준다는 것인데, 저런 일탈을 꿈꿔본 적도 없다. 아니, 꿈꿨다고 한들 저런 전개는 정말 생각해본 적도 없다. 너무나 진지한 나에게 이런 류의 코미디는 잘 맞지 않았다.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4종류의 등장인물을 보여준다.
로마에 여행 온 헤일리는 길을 알려 주던 로마 남자 미켈란젤로와 사랑에 빠진다. 이때만 해도 '이탈리아 남자의 친절이 진짜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여자'의 로맨스가 펼쳐질 줄 알았다. 그런데 이 둘은 진짜 사랑에 빠졌고, 이들의 결혼을 앞두고 양가 부모님께 인사드리는 자리가 마련된다. 헤일리의 아빠는 괴짜다. 그런 괴짜 아빠에게 엄마는 직설적으로 말하는 정신과 의사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헤일리와 미켈란젤로가 아니라, 헤일리의 아빠와 미켈란젤로의 아빠다. 미켈란젤로의 아빠가 샤워하면서 부르는 노래를 우연히 들은 헤일리의 아빠는 재능을 발견하고 그를 '샤워부스에서 노래하는 성악가'로 만들어낸다.
다음으로 소개 된 인물은 로마에 온 신혼부부 밀리와 안토니오다. 누구보다도 순수해 보였던 이 부부는 발칙한 불륜을 저지르고 일상으로 돌아온다. 미용실에 가겠다며 나선 밀리는 길을 잃고 핸드폰까지 잃어버리다가 유명 영화배우의 눈에 들어서 식사를 하고 잠자리까지 가지기 직전의 상황에 처한다. 한편, 안토니오는 돌아오지 않는 밀리 대신 갑자기 방에 난입한 안나를 친척들에게 아내로 오해받아 함께 여기저기 인사하고 끌려다니다가 결국 안나와 관계를 하게 된다. 밀리는 영화배우가 아닌, 영화배우의 호텔방에 숨어있던 강도와 잠자리를 가지게 된다. 이런 일이 있었던 것을 서로 모른 채, 밀리와 안토니오는 다시 방에서 재회하고 사랑을 나눈다.
그리고 로마에 휴가를 온 유명한 건축가 존과 로마에서 건축학을 배우는 잭이 나온다. 잭은 샐리라는 여자친구와 함께 살고 있는데 샐리의 친구인 모니카가 샐리의 집에 오게 된다. 샐리는 모니카가 너무나 독특하고 매력적이어서 모든 남자들이 샐리에게 반했다고 말한다. 그렇게 샐리와 존이 주의를 주었음에도 잭은 결국 모니카에게 빠지게 되고, 샐리와 헤어지려는 찰나, 너무나 쉽게 잭을 버리는 선택을 하는 모니카 덕에 잘못된 선택을 피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로마의 한 가정에서 가장으로 평범하게 살아가던 레오폴도는 어느 날 갑자기 유명 인사가 된다. 왜 유명해졌냐는 질문에는 '유명하다는 것이 유명하다'는 답만이 돌아온다. 그가 아침으로 무엇을 먹었는지, 무슨 속옷을 입었는지, 무슨 말을 하는지가 사람들의 관심사가 된다. 하지만 유명함이 갑자기 찾아왔듯 갑자기 떠나고 그는 다시 평범함을 되찾는다. 그 평범함에 기뻐하는 것도 잠시, 이미 유명 인사의 삶을 겪어본 레오폴도는 사람들의 관심을 갈구하는 불쌍한 사람이 된다.
이 4종류의 이야기가 중간중간 전환되면서 번갈아 전개된다.
자기 생각밖에 전달할 줄 모르는 괴짜 헤일리의 아빠로 인해 미켈란젤로의 아빠는 꿈을 찾고 꿈을 이루게 된다. 샤워부스 오페라는 정말 이상하긴 한데 또 보다 보면 적응되는 게 참 놀랍다. 헤일리의 아빠의 기획에 대해서는 혹평뿐이었지만, 요즘 시대에서는 참신한 기획으로 봐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헤일리의 아빠는 남들보다 앞서 나가는 사람이 되는 걸 참 좋아한다.
그 누구보다 순수해보였던 신혼부부 밀리와 안토니오는 그 순수함으로 인해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가지게 된다. 밀리는 단순 호기심에서, 안토니오는 단순 충동에 의해서. 사실 좀 역겨웠다. 아무리 순수해도 저 의도를 몰랐을까. 불륜의 이유를 저런 식으로 포장하다니. 처음부터 단호하게 거절했어야 하지 않나. 심지어 안토니오는 밀리가 영화배우와 있는 모습도 봤다. 밀리가 영화배우와의 만남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것을 더 수상쩍게 여기고 의심할 수도 있는 법인데, 그런 의심을 전혀 품지 않는다. 순수함은 착한 것도 아니고, 면죄부가 되지도 않는다. 뭐, 저 둘은 결국 서로의 일탈을 모르고 살아갈 테니 행복하긴 하겠다.
잭과 존의 이야기는 좀 특이하게 전개되는데, 존이 샐리나 모니카와 말하는 장면이 나오긴 하지만, 존과 잭의 대화는 샐리와 모니카에게 들리지 않는 것처럼 전개가 된다. 어쩌면 잭의 모습이 존의 젊은 시절의 과거를 회상하는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잭의 말은 무시하고 존의 말만 들으면 모니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나이가 들고서야 여우 같은 모니카의 본성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된 건 아닐까. 잭은 획기적인 건축물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건축의 판도를 뒤바꿀만한 그런 건축물 말이다. 하지만 나이 든 존은 그저 쇼핑몰을 건축하는 현실에 타협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젊은 그에겐 꿈이 있었지만 사람을 보는 눈이 없었고 이성이 없었다. 늙은 그의 꿈은 현실에 타협해버렸지만 사람을 보는 눈도 이성도 생겼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건축의 길을 걷고 있다. 현실에 타협했다는 것이 늘 실패의 의미는 아니다.
레오폴도의 이야기는 좀 안타깝다. 평범한 일상을 되찾았을 때 진심으로 행복해하는 레오폴도를 보고 삶의 한 해프닝 정도로 끝나나 했는데, 아무도 자기를 알아보지 않자 사람들에게 자기를 모르냐고 말하는 레오폴도를 보고 있자니 사람은 지위를 한 번 맛보면 변하고 그것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인들을 보며 가지는 의문과 같은 맥락이다. 저 자리에 가면 다들 저렇게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전혀 진지하게 전개되지 않는 영화조차 진지하게 리뷰를 남기는 나를 보니 좀 신기하다.
정상적인 사람이 없는 이 영화에서 가장 정상적인 사람을 꼽자면, 미켈란젤로의 아빠가 가장 현실적인 사람이 아닐까 한다. 자기 주관이 있었지만 또 어느 정도 귀가 얇고, 꿈을 이루는 추진력도 갖췄으면서 그만둬야할 때를 아는 사람.
어쩌면 우리는 모두 때때로 이상하고 비합리적이기 때문에 여기 나오는 모두가 현실의 우리 모습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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