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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 리뷰] 귀를 기울이면

by 미뉴르 2021. 9. 27.

 

영화 '귀를 기울이면' OST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랜만에 영화 리뷰를 쓰고 싶은 걸 보았다. 조금 운명적으로 보게 된 영화였다.

 

 요즘 자정부터 2시까지 중화TV에서 <처음부터 너야>라는 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만 한다는 것을 깜박하고 시간 맞춰 TV를 틀었다가 볼 게 없어서 TV채널을 뒤적거리다가 만화채널까지 가게 되었다. 그런데 막 시작한 극장판이 있길래 호기심을 갖고 보게 되었다. 평점도 9점대라서 두근두근 기대하면서 봤다.

 <처음부터 너야>는 아마 따로 리뷰를 작성하지 않을 것 같다. 대만 영화 특유의 유치하지만 간질간질한 감성을 좋아해서 그런 느낌을 기대하고 봤는데, 각 인물의 개성도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고, 여주도 별로 마음에 안 들어서 엄청 재밌진 않다.

 

 

 <귀를 기울이면>에 대한 전체적인 느낌은, 여주가 참 부럽다는 것이었다.

 주인공들은 풋풋한 중학생인데, 나의 중학생 때가 떠오르면서 조금 서글퍼지기도 했다. 나의 중학생 시절 꿈에는 저렇게 도전해볼 수 있는 환경이 있었던가. 그렇다고 지금은 마음놓고 모든 걸 뒷전으로 한 채 도전할 수 있는가.

 이야기의 시작은 책을 정말정말 좋아하는 주인공 시즈쿠가, 대출한 책에 있는 도서카드에서 한 이름을 의식하기 시작하면서 펼쳐진다. 도서카드는 그동안 그 책을 대출한 대출자들의 이름이 적혀있는데 무언가 익숙한 이름이 적혀 있다.

'아마사와 세이지'

다른 대출 도서를 보니 그 도서카드에도 같은 이름이 적혀 있다. 요즈음 시즈쿠가 읽는 책들에는 늘 한 발 앞서서 그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 장면을 보면서 나는 웹툰 <닥터 프로스트>가 생각났다. 많이 다른 상황이지만, 거기에도 나보다 앞서서 나와 같은 책을 읽는 사람의 설정이 나왔기 때문이다. 정말로 이런 사람이 있다는 두근거리는 상황이기는 할 것 같다. 저기 수많은 책 중에서 내가 읽는 몇 권의 책을 함께 읽는 사람. 나와 책 취향이 같은 사람. 그 사람은 이 책을 읽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시즈쿠는 '컨트리 로드'를 개사한 가사가 우연히 세이지 손에 들어가면서 세이지와의 인연을 시작한다. 세이지라는 이름은 두 사람이 친분을 꽤 쌓은 후에야 알게 되지만, 이미 초반부터 저 남자애가 세이지라는 건 다들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영화에는 재밌는 요소들이 나온다. 처음 흥미롭게 봤던 건 지하철을 혼자 탄 고양이이다. 지하철에 고양이가 탄 것도 신기한데 시즈쿠는 그 고양이에게 대화를 건넨다. 다행히 판타지는 아니어서 고양이가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나는 장르를 모르고 봤으므로, 판타지에 대한 기대를 계속 품고 봤었다. 시즈쿠는 그 고양이가 자신과 같은 역에서 내리는 것을 보고는 따라간다. 애초에 고양이가 달리는 속도를 따라간다는 것, 고양이를 따라가다가 놓쳤는데 다시 고양이가 눈 앞에 나타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고양이는 이내 어떤 장인의 가게로 들어갔는데, 가게 안에 고양이는 온데 간데 없고 고양이 남작 인형, '바론'만이 테이블 위에 서 있었다. 시즈쿠가 그 인형을 들여다볼 때 고양이 눈이 잠시 움직이는 것처럼 보여서 나는 정말 그 고양이가 저 인형인 줄 알았다. 만날 수 없는 슬픈 인연에 대한 이야기도 나와서 시즈쿠가 다른 세계로 가는 판타지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영화에 판타지적 요소는, 후에 시즈쿠가 쓰는 소설에서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알고 보니 그 고양이는 주인이 없는 고양이로, 여기저기 떠돌며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세이지는 '문'이라고 불렀고, 누군가는 '마타'라고 부른다고 했고, 시즈쿠는 어떤 아이가 '뮤타'라고 부르는 것도 보게 된다.

 세이지는 고양이가 들어갓더너 장인의 가게 주인인 할아버지의 손자(?)로 그 곳에서 바이올린을 만들고 있다. 시즈쿠가 '바론'을 다시 보고 싶어서 가게 앞을 기웃거릴 때 세이지가 가게 문을 열어 안으로 안내해주었고, '바론'을 한참동안이나 바라보던 시즈쿠는 세이지가 바이올린을 만드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바이올린을 켤 줄 안다는 말에 바이올린을 켜 달라고 하는데, 세이지는 대신 시즈쿠가 바이올린에 맞추어 노래를 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고는 시즈쿠가 개사했던 그 노래, '컨트리 로드'를 바이올린으로 연주한다. 그 모습이 꽤나 멋있었는지 시즈쿠는 조금 감동한다. 음치라서 부르기 싫다고 했으면서 이내 부르는 것을 보면서 순수하고 밝은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 나이의 나는, 그렇게 부르란다고 부르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친구들과 외출을 다녀 온 할아버지는 바이올린 소리와 노래 소리를 듣고는 친구들과 각자 악기를 준비해서 올라간다. 어느새 훌륭한 5명이 모여 훌륭한 공연을 하게 된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시즈쿠와 세이지는 서로에게 느끼는 호감을 담은 미묘한 말들을 나눈다. 세이지에게는 바이올린을 만드는 장인이 되겠다는 꿈이 있고,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대신 유학을 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부모님의 반대에 설득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꿈도 목표도 없이 살고 있는 시즈쿠는 그런 세이지의 모습이 멋지고 부럽기만 하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세이지가 부모님 설득에 성공해서 두 달 간 능력이 있는지 평가받으러 다녀온다고 말한다. 시즈쿠는 더욱 싱숭생숭해졌다. 세이지를 좋아하게 된 시즈쿠는 자신이 저런 멋진 세이지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친구 요코에게 이런 고민을 상담하다가 자신도 꿈을 가지고 도전하면 된다는 결론을 가지고, 글을 쓰겠다는 목표를 세우게 된다.

 시즈쿠가 쓰는 소설은 '바론'을 주인공으로 한다. 그래서 먼저 '바론'의 주인인 할아버지에게 주인공으로 써도 되는지 허락을 구한다. 할아버지는 '바론'을 주인고으로 해도 되지만 조건으로 소설이 완성되면 첫 독자가 되게 해달라고 말한다. 자신없어하는 시즈쿠에게 다듬어지지 않은 에메랄드 원석을 보여준다.

 시즈쿠는 세이지가 돌아오기 전까지 소설을 완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시험은 뒷전에 두고 밤낮 할 것 없이 소설을 쓴다. 완성된 소설을 할아버지가 읽었을 때, 자신이 부족한 걸 스스로 알고 있었음에도, 시즈쿠의 아름다운 원석을 보아서 좋았다는 할아버지의 말에 눈물을 터뜨린다.

 소설을 직접 써보면서 아직 본인의 부족한 점을 많이 느낀 시즈쿠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시즈쿠는 상상력이 풍부하다. 감성도 풍부하다. 소설을 읽으면서 눈물을 뚝뚝 흘릴 수 있는 아이이며, 계단 위에서 내려다 본 하늘과 도시를 보며 '구름 위에 떠있는 것 같다'라고 표현한다. 시즈쿠의 소설 속에서 바론은 "멀리 있는 것은 크게 보이고 가까이 있는 것은 작게 보인다"라며 세상의 모습을 설명한다. 그리고 그들은 바람의 기류를 타고 날아다닌다.

 이런 시즈쿠에게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다. 냅다 글을 쓰겠다고 공부도 하지 않아 성적이 떨어져서 대학생 언니에게 혼나고 있을 때, 시즈쿠의 아빠는 시즈쿠의 얘기를 먼저 들어보려고 한다. 시즈쿠의 부모님은 시즈쿠가 3주만 시간을 달라고 하면서 무슨 일인지는 말하지 않을 때, 믿어줄 수 있는 분들이었다. 현실에서 3주의 시간을 줄 수 있는 부모는 있을지언정, 무슨 일인지조차 말하지 않았을 때 공부까지 뒷전으로 하는 것을 허락해 줄 부모님은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중학생은 그런 것을 판단하기에 미숙하다고 생각하니까. 부모님은 시즈쿠가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글이 완성되었을 때, 장인 할아버지는 가게 문도 닫고 시즈쿠의 글을 읽는 것에 집중해준다. 그리고 시즈쿠에게 계속 용기를 북돋워주고 칭찬해준다.

 시즈쿠는 오랜 친구가 시즈쿠를 좋아한다고 고백해오고, 자신이 좋아하게 된 세이지는 사실 그 전부터 시즈쿠에게 관심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우연을 가장한 접근을 한 것이었다. 좋아하는 남자 때문에 더 열심히 자기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이 모습들이 전부 부러웠다. 나도 중학생 때 글을 쓰고 싶다는 꿈을 품었었다. 백일장 수상 후보에 오르는 것이 내가 글을 꽤 잘 쓴다고 인지하는 시작이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외고 준비로 인해 글을 쓸 여력이 없었다. 그것이 당연했다. 그리고 그만큼 내 글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기에, 고등학교 때 내가 쓴 논술이 대차게 까였을 때 받았던 상처는 잊을 수가 없다. 나는 그 이후로 내 글을 평가받는 게 너무나 두려웠다. 내 글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내가 쓴 글이라는 것만으로도 좋기 때문이다. 실패했을 때의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는 시즈쿠가 부러웠다. 아마 그 정도로 실패해본 적도, 그 정도로 비판받은 적도 없는 환경에서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 자신이 쓴 소설을 빨리 읽어달라고, 흥분된다고 하는 시즈쿠의 모습에서 질투의 감정과 씁쓸함을 느꼈다.

 나에게도 중학교 시절, 좋아하는 남자애가 생기고 나서는 공부를 더 열심히 해서 성적이 더 올랐던 경험이 있다. 중학생은 그런 나이였다. 그 순수함으로, 좋아하는 감정이 목표의 원동력이 되는 그런 나이.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좋아한다는 감정만으로 살아가기에는 너무 많은 변수가 존재하고, 나는 너무 지쳐버렸다. 그래서 나의 중학교 시절과 같은 순수한 사랑을 하고 있는 시즈쿠가 너무 부러웠다.

 

 시즈쿠는 친구 요코가 시즈쿠의 오랜 친구인 스기무라를 좋아한다는 말에 대놓고 둘을 엮으려고 하다가 요코에게 혼나기도 한다. 그때 정말 대수롭지 않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시즈쿠가 또 부러웠다. 나는 그 시절, 미안하다는 말을 하기가 힘겨웠다. 미안한다는 말을 해도 이미 시작된 미움은 사라지지 않았었다. 그리고 그 스기무라가 시즈쿠에게 고백했는데도 그 사실을 비밀로 한 채 요코와 아무렇지 않게 지낼 수 있는 생각없음도 참 부러웠다.

너는, 친구에게 배신당해본 적도 버림받아본 적도 없구나. 너는 인간관계에 대한 두려움이 없구나. 중학생 시절의 나는 왜 그렇게 계속 눈치보고 표현하지 못한 채 살아가야 했던 걸까.

 

 집에 늦게 들어와도 추궁당하지 않고 늦은 시간에 나갈 때도 어디가냐는 말에 "요 앞에"라는 말로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즈쿠의 천진난만한 모습이 많이 부럽고 질투난다.

 

 이 영화는 판타지가 아니라서 결말에 서브해피엔딩도 완전하지 않았다. 마지막에 스기무라와 요코가 함께 하교하는 모습은 나왔지만, '바론' 인형에 얽힌 해피엔딩은 일어나지 않았다.

 바론에게는 '루이제'라는 짝이 있었고, 장인 할아버지가 젊은 시절 독일에서 바론을 보고 사고 싶어했지만, 바론의 이전 주인은 루이제가 현재 수리에 맡겨져 있고, 루이제와 짝이기 때문에 둘 다 함께 파는 게 아니면 팔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장인 할아버지는 곧 귀국을 해야했고 루이제를 기다릴 수가 없었다. 그때 그 옆에 있던 여자가 나중에 루이제를 자기가 직접 받아서 전해주겠다고 했다. 바론의 짝이 루이제였듯, 장인 할아버지는 그 여자와 운명적 사랑을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독일에서 곧 전쟁이 터지면서 루이제도, 그 여자도 다시는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할아버지와 바론은 한평생 자신의 짝을 기다려왔다. 영화 마지막에 하루 동안 길을 오가는 사람들을 보여주어서 혹시나 바론도 해피엔딩이 되지 않을까 한참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부분만큼은 너무 현실적이고 슬픈 엔딩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꿈을 무작정 이룰 수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는 우리의 꿈을 그저 응원받고 지지받을 수 있는 그런 환경에 놓여있는가.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이 모두 아니오여서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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