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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 리뷰] 조제

by 미뉴르 2021. 1. 4.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국내도서
저자 : 다나베 세이코(TANABE Seiko) / 양억관역
출판 : 작가정신 2020.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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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코로나 방역이 강화된 와중에도 영화관은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러나 관객 수가 현저히 줄어든 만큼 상영작이 많지 않았고, 그 적은 상영작 중에서 고르게 된 영화였다. <원더우먼 1984>가 상영시간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조제>는 동네의 CGV나 메가박스에서는 하루 한 타임 또는 두 타임만 상영하고 있었다. 그마저도 상영관에 들어가니 관객은 나를 제외하고 단 한 커플이었다. 예매할 때도 바로 옆 좌석은 예매하지 못하도록 되어있었고 실제 상영관도 거리두기를 실천할 수 있도록 연속된 자리를 이용하지 못하게끔 테이핑 되어있었다. 관객이 없는 탓인지 타 영화 예고편을 제외한 광고는 일절 존재하지 않았다.

 

 

 왜 <조제>를 선택하였는가. 오랜만에 영화를 보기 위해 상영작들을 하나하나 검색해보았다. 분명 소문으로는 재미없다고 들었는데도 평점이 높은 영화도 있어서 조금 놀라웠다. 물론 평점만으로 판단하지는 않고 리뷰의 내용까지 참고해서 영화를 선정한다.

 <조제>와 관련해서 처음 본 리뷰는 '잔잔한 영화'였다. 그리고 그 뒷말은 '2시간 내내 잔잔해서 문제'였다. 처음 리뷰와는 다르게 그 이후로 찾아 본 리뷰는 대체로 호평이었다. 이 잔잔함이 견딜만하다면 괜찮은 영화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멜로/로맨스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관객 평점에서 여성보다 남성 관객들의 평점이 더 높다는 것이 좀 신기했다. 남성 관객들을 사로잡을만한 매력이 있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 매력을 보고 싶었다는 것이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이다.

 

 <조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잔잔한 영화가 맞다. 그런데 그 잔잔함이 자칫하면 지루한 경우가 많은데도, <조제>는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이 리뷰를 작성하는 것도 영화의 여운이 남았고 그 여운을 기록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는 사운드를 굉장히 잘 활용한다. 중간중간 삽입되는 OST도 많은 편이고 로맨스라는 장르가 아니라면 긴박감 넘치는 장면을 넣어 긴장을 유발하고 자극을 준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그것에 굉장히 익숙해져 있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집에서 잔잔한 영화를 볼 때면 답답해서 뒤로 스킵해버린 적도 있다. 영화관에선 그것이 졸림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조제>에서는 인물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유심히 보게 되었다. 그들이 조용하고 느리게 내뱉는 그 말이 무엇인지,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보면서 듣게 되었다. 그래서 지루할 틈이 없었다. 그들의 느리고 잔잔한 템포를 그대로 따라갈 수 있었다.

 

 원작을 읽지 않아서 원작의 내용과 얼마나 다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원작을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화가 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오히려 나는 원작이 어떻게 풀어지는지도 궁금해졌다. 영화를 보고 이해하지 못한 그들의 감정도 어쩌면 원작을 통해 더 잘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조제는 여자 주인공이 자신을 칭하는 말이다. 조제는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이다. 그리고 망상 장애도 가지고 있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심리학 웹툰 <닥터 프로스트>를 봐서인지 그녀의 망상이 잘 느껴졌다. 그녀의 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녀의 말의 모순을 남자 주인공 영석이 지적했을 때,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대꾸하기도 하였고 말을 바꾸기도 하였다. 영석은 오히려 그녀의 그런 모습에 끌린 건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생각이, 그녀의 세계가 궁금했고 그것이 시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녀는 할머니가 주워다 준 책을 많이 읽었고 그래서 책에서 읽은 내용에 관한 한 아는 것이 많았다. 할머니가 주워 온 술병에 남은 술 몇 방울로 그녀는 위스키 맛을 알게 되었다. 그 몇 방울로 위스키에 무엇이 들어갔는지 분석하지만 나는 그것 또한 그저 그녀가 그럴싸하게 내뱉는 말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것이 제대로 된 분석이든 지어낸 분석이든, 영석은 그 말에 끌렸다. 영석은 기어코 그녀가 말했던 '바디감'이라는 말을 어떻게든 사용해본다. 조제는 스팸과 참치 통조림을 이용한 요리에 능숙했다. 조제는 다리가 불편하지만, 자다 일어나서 요강을 쓰는 할머니와 달리 화장실까지 가는 여자였다. 사실 할머니가 요강을 쓴 것이 결국 몸이 아팠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나중에서야 들었다. 밖을 돌아다니기를 싫어하는 조제는 주로 책을 읽으며 하루를 보냈다. 그녀는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하지만, 외국인 아빠도 있다고 말하지만, 보육원에서 정봉이라 부르는 철호와 함께 자랐다. 조제는 자신이 정봉이의 엄마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정봉이라고 부르는 철호와 조제는 나이가 엇비슷해 보인다.

 철호를 통해 조제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었다. 철호는 자신을 찾아 온 영석에게 '조제는 입만 열면 거짓말'이라고 말한다. 말을 툭툭 내뱉고 함부로 하는 철호였지만, 그래도 조제가 싫지만은 않은 듯했다. 조제라는 이름은 그녀가 책에서 본 주인공의 이름이라고 한다. 그 주인공이 좋아서 그 이름을 쓰고 있다고 한다. 동일시하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책의 주인공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동경의 대상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철호는 '엄마'라는 말을 싫어했는데 어느 날부턴가 조제가 자신이 철호의 엄마라고 했다고 한다. '엄마'를 찾으며 우는 아이들을 패고 혼내줬다는 철호가 조제에게만큼은 너그러웠던 것 같다. 어쩌면 철호의 내면에 엄마를 그리워하는 그 마음을 조제는 알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있던 보육원 원장은 악질이었다고 한다. 어느 날 조제는 보육원 원장이 먹는 음식에 이상한 것을 넣었고 그 날로 보육원을 도망쳐 나왔다. 보육원에서는 다리가 불편한 조제가 혼자서 도망쳤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게 도망 나온 조제를 할머니가 거둬 키웠다. 조제는 그 사건으로 자신이 살인을 했다고 믿게 되었다고 철호는 말했다. 어쩌면 그 살인에 대한 착각과 죄책감이 그녀의 망상의 시작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만 열면 거짓말과 망상인 그녀이지만 밉지 않았다. 이상하지도 않았다. 아니, 정말 이상한 매력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귀 기울여 듣게 되었다. 조제는 '정봉'이는 아빠가 데려온 아이라고 말했다. 정봉이에게 아빠가 없었고 그때부터 자신이 엄마가 되어줘야겠다고 생각을 했다고 한다. 조제가 말하는 '아빠'라는 존재는 누구를,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또 조제는 자신이 세상 모든 곳을 가봤기 때문에 가고 싶은 곳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많은 곳이 새롭고 신기한 것이었다. 놀이공원에서 풍선을 갖고 싶어하던 그녀의 모습이, 관람차를 계속 타고 싶어 하던 그녀의 순수한 모습이 인상 깊다.

 

 영석은 평범한 지방대 대학생이었다. 자취하는 동네에 휠체어가 고장 나서 쓰러져 있던 조제를 도와주면서 조제를 알게 되었다. 썸 타는 대학 후배가 있고, 취업을 준비하는 졸업반이며, 대학의 여교수와는 그렇게 건전한 관계는 아닌 듯하지만, 그렇다고 크게 타락하지도 않은 그런 대학생이었다. 여교수의 집에서 자다가 일어나던 영석, 썸타는 후배의 고시원에서 관계를 가지려고 했지만 방음이 안되어서 그만두었던 영석, 그리고 조제가 옆에 있어달라는 부탁에 조제의 집에서 살게 된 영석. 이렇게 영석은 세 여자의 집 또는 거주 공간에 들어가지만, 정작 영석이 살던 자취방은 단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다. 자취생이라는 영석의 자취방이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것이 좀 의아했다. 이 여자들의 집과 거주공간은 영석의 안식처를 의미하는 것이었을까. 여교수의 집에서는 거의 쫓겨나다시피 나왔고, 여자 후배에게는 고시원이 너무 좁아 더 좋은 곳으로 옮길 생각이 없냐고 물어보기도 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조제의 집은 영석의 도움으로 수리를 하고 더 좋은 공간이 된다. 영석이 개입할 여지가 있는 공간이자 영석을 받아줄 여유가 있는 공간, 그것이 바로 조제의 집이었고 조제의 마음이었다. 영석이 도움을 줄 수 있는 공간이고 영석이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조제였다. 그의 마음은 사랑처럼 보였지만, 어쩌면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내어 준 다른 감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영석이 대학 후배와 있는 모습을 보고 조제는 영석에게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했다. 영석에게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을 몰랐고, 아마 자신과 영석이 다른 세계에 살고 있음을 느꼈던 것 같다. 자신도 모르게 영석에게 주던 마음과, 영석이 주던 관심이 무서워졌던 것 같다. 자신이 초라해 보이고 한심해 보였을까.

 그런 그녀의 벽에 영석은 그녀를 더 이상 찾아가지 못했다. 그러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뒤늦게 전해 듣고 조제를 찾아간다. 풀리지 않은 그녀의 마음으로 인해 두 사람은 조용한 다툼을 한다. 결국 영석은 또 돌아서서 나오지만, 할머니가 떠나고 조제는 많이 외롭고 힘들었던 것 같다. 조제가 그 불편한 다리로 휠체어를 끌고 나와 영석을 잡는다. 자신의 옆에 있어달라고. 한 순간도 떨어지지 말아 달라고. 그렇게 영석은 조제의 집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들의 삶은 충분히 행복해 보였다.

 

 그런데 5년 후의 모습에서 영석은 조제의 옆에 있지 않았다. 그 장면에서 설마 영석이라는 존재가 조제의 망상이었던가, 라는 생각까지 들었지만 다행히 망상의 존재는 아니었다. 처음과 달리 조제는 머리도 잘 빗고 자신을 관리하게 되었고, 도구를 이용하여 운전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바깥세상으로 나오게 되었다. 영석은 관계가 끝난 줄 알았던 대학 후배와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조제는 여전히 영석을 생각하고, 영석은 여전히 조제를 떠올린다. 그러나 그들은 함께하지 않는다.

 어느 때인지는 모르겠지만 조제와 영석이 함께 아쿠아리움을 간 그 날, 조제는 영석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더 이상 외롭지 않다고. 더 이상 옆에 있지 않아도 괜찮다고. 옆에 있지 않아도 계속 옆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겠다고. 영석은 조제의 그 말에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 때의 영석의 감정은 이별의 슬픔이었을까. 아니면 조제가 그 말을 하게 만든 미안함이었을까. 아니면 조제의 그 말에 어떤 대꾸도 할 수 없는 자책감이었을까.

 그 아쿠아리움의 물고기들을 보며 조제는 "저 물고기들은 사람들이 갇혀있는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라는 말을 한다. "저 물고기들 중에는 갇혀있는 저곳이 행복한 물고기도 있을 것이다"라는 말도 한다. 그 물고기가 조제를 표현한 것만 같았다. 조제는 그 낡은 집에 갇혀있었지만 조제에게는 만날 일이 없는 바깥세상의 사람들이 갇혀 있는 존재였다. 조제는 그 집에서 정말 행복했다.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조제는 혼자서 살아갈 힘을 얻었다. 단순한 생각으로는 자신이 영석의 발목을 붙잡는다고 느꼈기에 영석을 놓아준 것이라는 생각도 하였다. 하지만 이 이유가 전부는 아닌 것 같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함이 이 영화가 나에게 남겨 준 여운이다. 조제는 무슨 생각을 했고 무엇을 느꼈을까. 무엇이 그녀를 그토록 변화하게 만들었을까.

 조제와 영석의 감정은 사랑이었을까. 아니면 조금 더 심오한 감정이었을까.

 

 조제가 영석에게 차려주던 밥의 의미. 조제가 말한 호랑이의 의미. 나뭇잎과 꽃잎이 지는 것을 죽는다고 표현하던 조제의 마음. 아직도 잘 모르겠는 것들이 많지만, 조제는 잘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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