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릴러 장르로 소개되기도 하지만 무섭다기보다는 안타깝고 슬픈 영화다.
주인공인 안소니 입장에서는 눈앞에 펼쳐지는 장면들이 스릴러이지만 이를 지켜보는 가족들의 입장에서는 답답하고 힘겨우며, 안소니의 상황을 이해한 관객의 입장에서는 안타까움이 남는다.
주인공인 앤의 아빠 안소니는 치매를 앓고 있다. 처음에는 그저 시계를 둔 장소를 잊어버리는 정도에 불과한 가벼운 증상이지만, 기억과 그가 보는 것들에는 왜곡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앤은 갑자기 아빠인 안소니를 두고 파리로 가겠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자신의 집이 아닌 앤의 집에 와 있고, 앤의 전 남편이 나타나고, 앤이라고 나타난 여자는 처음보는 여자다. 그리고는 앤은 파리로 가겠다고 한 적이 없다며 안소니의 옆에 있을 거라고 말한다.
안소니를 돌보기 위해 고용한 간병인 로라를 보고 안소니는 자신의 딸 루시와 닮았다고 말한다. 그런데 다다음날 나타난 로라는 처음보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녀도 주변의 가족도 모두 낯선 그녀가 로라라고 말한다.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안소니는 요양원에 보내져있었다. 그런데 그 곳이 요양원인지도 모른 채, 기억은 점점 사라져 딸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어느 새 엄마를 찾는 어린아이가 된다.
정말 소름돋는 연출은 안소니가 보는 앤의 모습이 바뀐다는 것이다. 치매에 걸린 사람들이 아는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에게는 정말 낯선 사람의 얼굴인데 그 낯선 사람이 '내가 앤이야'라고 말하면 처음에는 의심하다가도 그저 받아들이게 된다. 그에게는 세상이 너무나 이상하다. 방금까지 아침이었는데 갑자기 저녁이고, 방금 아침을 먹었는데 저녁 먹을 시간이라고 한다. 시계는 분명 그가 찾아서 손목에 찼는데 자꾸 어딘가로 사라진다. 앤은 파리에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 것인지, 이혼한 적이 없는 것인지, 이혼하고 혼자 사는 것인지, 그녀의 남편은 제임스인지 폴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안소니가 보는 세상에서는 진실이 무엇인지 모르고 앞으로도 영원히 알 수가 없다. 모두가 자신을 속인다고 해도 그저 그대로 그렇구나 믿을 수밖에 없다.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그렇게 말하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제정신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힘든 것이 아닐까.
그래도 행복한 것이라면, 루시를 사고로 잃어버린 것조차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 그에게는 그나마 위안일까. 그렇게 오래도록 기다리는 자신의 딸이 그래도 세상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에겐 다행일 것이다. 처음에는 계속 루시를 찾는 안소니와, 그런 안소니를 바라보는 앤의 불편한 표정, 그리고 치매라는 상황에서 앤이 사실 루시가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아니었다.
나는 양가 할머니가 모두 치매를 앓으셨다. 그래도 활동을 하실 때에는 기억에 크게 문제가 있지는 않으셨는데, 요양원에 들어가면서 급격히 안 좋아지셨고, 대화조차 제대로 나눌 수 없으니 기억이 뚜렷하신지 어떤지도 알 길이 없었다. 안소니의 시간에는 공백이 크게 존재한다. 그가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은 통째로 건너뛰게 된다. 어쩌면 그것이 언제 올지 모르는 앤을 기다리는 외로운 시간을 조금은 줄여주지 않을까. 요양원에 들어가신 할머니들을 집이 멀다는 이유로, 또 코로나라는 이유로 자주 찾아뵐 수가 없었다. 사실 그만큼의 애정도 없기도 했다. 1년에 2번 명절에 찾아뵙는 게 전부였으니까. 아무튼 요양원에 홀로 있는 그 시간이 얼마나 외로울까 안쓰럽기도 했는데, 차라리 안소니처럼 기억을 듬성듬성 건너뛰는 것이라면 그나마 그들에게는 고통이 덜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디까지나 영화적 연출이기 때문에 실제로 그들이 어떻게 시간을 느끼고 받아들이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치매에 걸린 사람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세상이 어떤지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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