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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기타

[드라마 리뷰] 스물다섯 스물하나

by 미뉴르 2022. 5. 9.

출처: 스물다섯 스물하나 공식홈페이지(http://program.tving.com/tvn/twentyfivetwentyone)

 

<스물다섯 스물하나> 대표 OST, '태일 - Starlight'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창 바빠서 책도 영화도 제대로 못 보는 요즘. 뮤직카우 투자는 계속하고 있지만 시간 내서 글을 쓰기가 어렵다.

계속되는 야근, 야근을 안 하는 날도 뭐하면서 시간을 보내는지도 모르겠는데 정신 차려보면 잘 시간이다.

10년 넘게 유지해 온 취미인 웹툰조차 제대로 보지 못해 주말에 몰아봐야 하는 게 요즘 나의 생활이다.

그러던 중,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보게 되었다.

드라마 16부작을 보려면 최소 16시간, 90분짜리 드라마의 경우는 꼬박 24시간을 내야 1화부터 마지막화까지 볼 수 있다.

그래서 드라마를 볼 엄두를 내기가 어려웠다.

친구 중에 드라마 하이라이트 영상만 보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에게 그게 무슨 드라마를 보는 거냐고 말했었는데, 사실 요즘 내가 거의 그 꼴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드라마 볼 시간조차 내기 어려웠던 내가, 주말을 쪼개서 드라마 한 편을 몇 주에 걸쳐서, 아니 몇 개월에 걸쳐서 보았다.

보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유명한 드라마는 여기저기서 제목이 많이 들린다. 그래서 이 드라마가 재밌다더라~라고 말은 하고 다녔다. 그런데 아는 선배 중에, 드라마나 영화를 굉장히 까다로운 안목으로 보는 선배가 2521 어쩌구 하면서 말을 했다.

오랜만에 볼만한 청춘드라마라고 생각했는데, 13화부터 이상해지더니 결말이 이상하다고 말했다.

결말이 이상하다는 소문은 자자하게 들었는데, '볼만한 청춘드라마'라는 말에 꽂혀서 보게 되었다.

그 앞부분이 얼마나 괜찮길래 저렇게 말했는지 궁금했고, 그 앞부분이 기대되었다.

 

 그렇게 보게 된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1화는 정말 내 취향 저격이었다.

<또 오해영>을 명작으로 꼽는 이유, 그리고 <로맨스가 필요해 2012>를 정말 좋아했던 이유 중 하나는, 여주인공 캐릭터가 매우 솔직하고 자기 할 말을 다 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주인공 희도도 마찬가지였다. 백이진과의 첫 만남에서 다짜고짜 "너 때문에 오줌 싸는 소년이 오줌을 못 싸게 됐잖아!"라고 말하는 장면은 신선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주인공이 꿈만큼은 뺏기지 않을 거라고 착각했던 것도, 꿈을 뺏긴 후에 했던 어리숙한 행동들도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 맞는 걸 싫어하는데, 나처럼 비 맞는 걸 좋아하는 희도가 좋았다. 백이진의 삶에 대한 걱정과 고통 앞에서 해맑게 웃는 희도가 좋았다.

 그리고 하나 더 좋아했던 건 서브커플인 지웅과 유림이었다. 특히 지웅이의 대사 하나하나가 설레지 않을 수가 없을 정도로 배려가 묻어있었고, 적절하게 선을 지키면서 마음을 표현하는 말들이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도 희도와 이진보다 저 둘이, 지웅의 마음이 온전하게 전해지기만을 바랐다. 저 둘이 함께 비를 맞던 장면도 아직까지 기억 속에 남아있다. 함께 웃으며 비를 맞던 그 장면이 가장 사랑스럽고 설레는 장면이었다.

 

 사실 이렇게 리뷰까지 쓸 생각은 없었다. 11화부터 이상하다는 사람들, 13화부터 이상하다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때부터 꽤 유심히 보았다. 그리고 바로 문제의 마지막화도 장면 하나하나 어떤 부분이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을까 생각하면서 보았다. 그런데 마지막화를 다 보고 난 후의 나의 감상은, '괜찮은 결말'이다.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결말을 현실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부터, 나도 이 결말을 괜찮은 결말로 평가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놀랍진 않았다. 나는 이진도, 희도도 모두 이해 가고, 저들이 왜 저런 결말을 가졌는지도,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내 나름대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에겐 괜찮은 결말이다.

 

 새드엔딩의 드라마가 이전에 없었던 건 아니다. 어렸을 때 보았던 <천국의 계단>도 주인공이 죽으면서 끝났고, <슬픈 연가>는 엔딩이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는데 아마 주인공이 죽으면서 제목 그대로 새드엔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새드엔딩은 다른 새드엔딩과는 다르다. 주인공들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계속 사랑하지만, 죽음이라는 벽 앞에서 새드 엔딩을 맞이할 뿐이었다.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주인공들이 결혼이라는, 드라마 상의 연애의 결말에 도달하지도 않았을뿐더러, '이별'을 한다. '이별'을 하고 재결합하지 않는다. 이것이 지금까지와의 드라마와도, 새드엔딩과도 다른 점이다. 그런데 나는 그게 좋았다.

 

 나는 이들의 이별이 단순한 이별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이들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고, 아마 계속 사랑할 거다. 그것이 결혼도, 재결합도 아닌 그저 서로의 삶을 응원하는 형태로 남은 것뿐이다. 희도와 이진이 싸우면서 했던 말이 있다. 가지고 싶어서 가졌는데, 가지고 나니까 좋지 않았다는 뭐 그런 말이었다. 가지지 않았을 때가 더 좋았다고.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썸을 타다가 연애해 본 사람들은 조금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썸을 탈 때의 설렘은 막상 연애를 시작하면 줄어드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짝사랑할때나 썸 탈 때와는 다르게, 연애를 시작했을 때 마냥 좋지 않다. 이전보다 서로에게 기대하는 게 많고, 그래서 더 실망하고, 그리고 상대방에게 의무가 생긴다. 연애라는 이름 하에서 생기는 의무. 그리고 그것이 사람을 힘들게 만든다. 이진과 희도의 모습도 잘 지켜보면, 둘이 사귀기로 결정하기 전에, 무지개니 뭐니 관계를 칭할 때가 훨씬 아름답고 설렜다. 그 이유는 그들에게 서로에 대한 의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둘은 연애 이전부터 각자의 방식대로 가장 아름답게 서로를 위하고 있었다. 그런데 연애라는 굴레 아래에서 그 각자의 방식을 잃어버렸고, 빛을 잃어갔다. 그래서 '이런 사랑'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희도의 말이 이해가 갔다.

 

 예전에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리뷰를 쓸 때도 아마 비슷하게 해석했던 것 같은데, 사랑에는 여러 형태가 있다. 가족간의 사랑, 친구 간의 사랑, 연인 간의 사랑, 선후배 간의 사랑, 스승과 제자의 사랑, 그리고 바로 이렇게 정의되지 않는 사랑이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에서 보여준 사랑은, 서로를 동경하고 서로를 닮고 싶어하고 서로가 되고 싶어했던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사랑은 무슨 사랑일까. 희도는 계속해서 이진에게 우리의 관계는 무엇이냐고 물었다. 다치면 병원에 당장 데려다 줄 정도로 걱정해주는 딱 그런 관계. '무지개', '이런 사랑', '이런 방식' 애매하고 특이한 표현들이 드라마 내내 나온다. 사랑에는 여러 형태가 있으며, 여러 방식이 있다. 그리고 이들의 사랑은 단순히 연인 간의 사랑이 아니라는 걸, 작가가 표현하고 싶었던 거라고 생각한다.

 

 드라마를 잘 보면 다른 드라마에선 흔한 그 키스신조차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는 각 커플에서 한 번밖에 찾아볼 수가 없다. 일단 주인공들이 드라마상 나이가 미성년자였기 때문도 있지만, 연인 간의 사랑에서 대표적으로 나타나는 스킨십으로는 이들의 사랑을 제대로 표현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웅과 유림의 경우는, 지웅이가 마음을 간접적으로는 많이 표현하지만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에는 꽤나 많이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그들의 키스신은 한 번이었다. 그리고 서브 커플인데 굳이 많이 보여줄 필요도 없다. 그런데 희도와 이진도 딱 한 번이다. 희도가 19살의 마지막과 20살의 시작에 한 키스. '이런 사랑'은 안 되는 거냐고 물었던 바로 그 내용이다. 서로를 잃을 수 없어서 시작한 그 연애가 결국은 '이런 사랑'은 안 되는 걸 보여줘 버렸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관계에 가장 적절한 스킨십은 포옹이었다. 그래서 만날 때마다 포옹하는 장면이 꽤 많이 나온다. 서로가 사랑스럽고 애틋하고 안쓰럽다.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다. 그 마음이 때로는 오빠와 동생의 관계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 사랑스러움을 담아 서로를 끌어안는 모습이 제일 아름다웠다. 그리고 가장 행복해 보였다.

 

 마지막화에 못다한 말, 이별할 때 하고 싶었던 말을 나누는 장면에서는 예전에 이미 서로 나눈 적 있는 대화가 오고 갔다. 너는 나를 웃게 한다던가, 뭐 그런 말들 말이다. 그때의 관계가 딱 이들의 관계다. "너는 나를 옳은 방향으로 이끌어." 이진이 희도를 향한 감정이 사랑이라고 처음 말하던 다리 위 장면에서 했던 말이다. 그 마음을 사랑이라고 말했지만 그 사랑은 연인 간의 사랑이 아니었다. 서로의 삶에 빛, 이정표, 쉼터가 되는 그런 사랑이었다. 실제로 이진은 당시에 그 사랑을 연애로 연결시키지 않았다. 그저 그 관계로도 만족하는 모습이었다. 그때의 그 희도를 바라보며 웃는 모습이 좋았다.

 

 그래서 딱 그 정도의 관계로 다시 돌아가기로 한 이들의 모습은 나름대로의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한다. 서로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 마음으로 응원해주는 관계. 처음 이진이 서울을 떠나 잠수를 탔을 때에도, 오히려 그때의 희도는 그저 이진이 어디에 있든 잘 지내기를 응원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 마음이 연애라는 속박 아래에서 변질되었을 뿐이다. 이들은 시간과 거리에 상관없이 그런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랑을 여전히 계속해서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네가 어디에 있든 내가 가서 닿을게"라고 말했던 것처럼.

 

 또 하나 말하고 싶었던 것은 승완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다. 조금 아쉬운 부분으로 남는다. 늘 삶이 재미없다고 말하던 승완은 결국 마지막에 그 재미를 찾긴 했지만, 그것이 연애에서 비롯되는 재미라는 점이 좀 안타까웠다. 승완이 삶 안에만 있는 무언가를 찾기를 바랐다. 타인에 의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무언가를 해내는 결과로 이어지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 삶의 재미없음을 조금 더 깊게 다뤄주기를 바랐다. 요즘 내 삶이 힘들어서 그런지, 세상을 그저 관찰자로서 바라보는 염세적인 관점을 더 많이 보고 싶었다. 영원한 것이 없는 세상에 대해 승완이가 조금 더 깊게 고찰하고 비판하기를 바랐다.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던 결말과 대비되는 비현실적인 부분들도 존재한다. 어떻게든 사람 구실을 하게 된 결말을 나는 비현실적이라고 느꼈다. 국가대표, 떼돈 버는 펜싱클럽, 스트릿패션 대표 등 주인공들이 생각보다 빠르게 자리를 잡은 모습은 나를 씁쓸하게 만들었다.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고, 무언가를 이루거나 무언가가 되기 위해 겪는 시행착오는 매우 많다. 그것이 현실인데, 결국 드라마이기에 모두들 꿈을 이루고 돈도 잘 벌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가 되는 게 씁쓸했다. 인생이 늘 불행한 것도 늘 행복한 것도 아니지만, 불행했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한 결말이 되는 것도 아닌 게 바로 현실이니까. 그리고 그걸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느끼고 있다. 내 인생의 대부분이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 되기 힘들었을 국가대표. 절대 쉬운 자리가 아니기에 훈련하고 시합하는 과정이 조금 더 많이 나왔으면 했다. 그리고 희도가 유림이를 한 번 이긴 걸로 끝이 아니라, 다시 유림이가 역전하고, 다시 희도가 역전하는 그런 치열한 경쟁을 기대했다. 그런데 유림이는 계속 돈이 필요한 상황이었을 텐데 너무 일찍 은퇴를 했고, 또 마드리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는 이유로 러시아에서 힘든 일을 겪었을 과정도 나오지 않았다. 유림이가 러시아에 좋은 조건으로 귀화할 수 있었던 데에는 유림이가 금메달을 딸 수 있다는 러시아의 기대가 분명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20대 후반에 은퇴를 말하는 희도를 보고 있자니 내 삶이 서글퍼졌다. 20대 후반부터 꿈을 이루고 생계 걱정 크게 없이 자유를 찾는 희도와 다르게, 나는 30대에 시작하는 삶을 살고 있다. 물론 운동 선수들이 10대 초반부터 겪는 훈련과 고통이 크니까, 그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10대 초반부터 20대까지 공부를 선택해서 살아오면서 한 공부가 그 운동보다 못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도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공부해왔기에. 인생이 힘드니까 참 별 걸 다 비교한다.

 유림이의 부모님은 정말 말도 안 되게 좋은 분들이었다. 90년대 말의 부모가 저렇게 열린 사고를 하고 따뜻한 감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승완이의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그 시대에 자퇴를 하겠다는 딸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주는 엄마는 정말 비현실적이다. 그 이유를 자세히 묻지도 않고 그저 따라주는 건 더더욱.

 

 그와 대비되는 희도의 엄마, 재경을 마지막 주제로 말하려고 한다. 드라마 내내 복선으로 깔렸던, 취재원과 너무 가까워지면 안 된다는 주의는 이진과 유림 선에서 끝났다. 사회인이 사적인 관계보다 직업적 의무를 우선해야한다는 것에는 직장인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유림은 그렇게 이진을 이해해주었다. 그런데 재경이 남편의 장례식에 가지 않고 자발적으로 속보에 지원했던 이유가 결국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 장면을 보여주는 순간 내 나름대로 해석해버린 답을 가지고 있었다. 재경은 남편의 죽음을 전해 듣는 순간, 그 슬픔에 휩싸이기에 앞서, 이제 희도의 엄마로서 희도를 홀로 키워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희도를 잘 키우려면 직장에서 안정적인 지위를 가져야 했다. 그래서 아내로서의 선택이 아니라 엄마로서의 선택으로 속보를 담당하기로 선택했다고 생각했다. 희도는 재경이 가족보다 꿈과 자기 자신만을 우선시한다고 생각했겠지만, 나는 재경이 가족을 더 우선시했다고 믿고 싶다. 꿈과 자기 자신이 우선인 사람이 가정을 꾸리는 것은, 글쎄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최소한 가정이 생긴 순간부터는 가정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게 나의 가치관이기 때문이다. 장례식에 가지 않은 걸 누구보다 후회했을 것도 재경이고, 가장으로서 무게를 온전히 짊어져야 했던 90년대의 여성이 바로 재경이다. 다만, 그 이유를 희도에게 설명해주었다면 모녀가 어긋나는 걸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재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결국 희도가 우선인 엄마였다. 희도만 그것을 몰랐을 뿐.

 

 처음 드라마를 볼 때 꿈이 있는 희도가 부러웠다. 너는 참, 꿈을 일찍 찾았구나.

아무튼 나는 이제 다시 현실을 살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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