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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최근에 시작한 드라마인 <지금 거신 전화는>의 1화 시작 부분부터 보게 되었다.
찾아보니 웹소설 원작인 작품이다.
웹소설을 보지는 않았지만 원작이 있는 만큼 괜찮은 소재와 함께 잘 짜여진 스토리 라인, 훌륭한 캐릭터들을 갖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럼에도 드라마 2화까지 방영한 현 시점에서 찝찝한 감상이 떠나질 않아 후기를 남긴다.
드라마가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쓰는 글이라, 처음에는 드라마 공식 사이트에 남기려고 했으나 회원가입 등 절차가 귀찮고 그 정도의 애정과 오지랖은 아니라서 블로그에만 쓰기로 결정했다.
가장 먼저, 캐릭터의 감정에 감정이입이 잘 되지 않는다.
처음에는 작품의 장르가 스릴러라고 생각하며 보고 있어서 이 부분이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1화 막바지 부분을 보고서 '음? 스릴러가 아닌 것 같은데?' 라는 생각에 찾아보니 장르가 로맨스릴러다.
그러면 기본적으로 스릴러에 로맨스가 가미되는 것이 아닌, 로맨스를 기본 바탕으로 스릴러가 한 스푼 가미된 장르여야 한다.
로맨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메인 커플의 감정선이다.
특히 그들이 서로에게 매력을 느끼고, 사랑에 빠지고, 상처받고, 질투하고 이런 감정선들이 매우매우 중요하다.
이 감정선을 정말 잘 나타낸 드라마가 <또 오해영>, <로맨스가 필요해 2012>, <연애의 발견>, <사랑의 온도>와 같은 드라마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감정선은 어떻게 잘 만들어낼 수 있는가?
배우의 연기도 중요하지만, 그 감정선을 보여주는 대사, 지문, 스토리, 그리고 연출까지 모두 함께 받쳐줘야 한다.
저 드라마들이 설마 배우의 연기만으로 칭찬 받은 드라마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1화를 보면서 딱 느낀 점이 채수빈의 연기가 조금 아쉽다는 점이었는데, 드라마를 보고 하루 동안 곰곰이 생각해보니 단순히 배우의 연기력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홍희주가 납치를 당하고 백사언이 시체 상태가 되면 그때 연락하라고 냉혹하게 말할 때, 홍희주는 상처를 받았다.
그런데 그 상처의 깊이를 홍희주의 표정만으로 나타내는 건 한계가 분명하다.
함묵증인 홍희주는 대사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없다.
그렇다면 과거 회상이든 생각이든 나레이션으로 넣어줘야 했다.
2화에서 홍희주가 그 충격으로 함묵증을 극복하고 욕설을 내뱉는 장면이 나왔으나, 시청자에게는 그저 어이가 없고 웃긴 장면이었다.
'아, 백사언에게 열받아서 함묵증이 고쳐졌네. 오히려 고마워해야...되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렇게 생각한 건 홍희주가 백사언에게 가진 감정이 사랑에 기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감정선의 기본은 상대방에 대한 사랑, 적어도 동경, 호감, 기대와 같은 감정이 먼저 기반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1화에서 홍희주가 백사언에게 보여준 감정은 무엇인가?
손가락으로 욕을 날리는 장면 외에, 자신의 목숨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남편에 대한 실망감과 서운함 말고 어떤 애정이 있었던가?
그래서 1화에서 홍희주의 감정선에 대한 몰입감이 떨어졌고, 왜 그녀가 그토록 상처를 받았고 그런 복수 방법을 선택하게 됐는지에 대한 공감이 부족했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감정이 따라가지 못하는 전개였다.
차라리 3년 전에 저녁을 차려놓고 늦은 시간까지 백사언을 기다리던 홍희주가 엄마의 명령이 아니었다면, 아니면 적어도 엄마의 명령이었더라도 그것과 별개로 개인적으로 백사언에게 호감을 가지는 장면이 있었더라면,
잘난 남편을 자랑스러워하거나, 매일 남편의 방송만으로 수어를 연습하는 모습으로 남편에 대한 동경을 키워가는 장면이 더 부각되었더라면,
결혼 전에 백사언에게 조금이라도 호감을 갖는 장면이 있었더라면 홍희주의 감정선을 이해하기는 조금 더 쉬웠을 것이다.
그런데 드라마에서 보여준 모습은 그저 엄마의 명령이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것으로 백사언에게 저녁을 차려주고 같이 춤을 추고 잠자리를 함께 하려고 했다. 그런 행위가 익숙치 않아서 서투른 모습이었고, 백사언이 키스하는 줄 알고 눈 감는 장면 또한 설레서가 아니라 그저 서투르기 때문에로 보였다.
남편의 방송으로 수어를 연습한다는 언급이 나왔으나, 그걸 연습하면서 홍희주가 어떤 표정인지, 어떤 마음인지는 전혀 보여주지 않았다.
오히려 저 둘의 관계가 처음부터 철저히 계약관계였으며, 홍희주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마음이 없었던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나를 그저 도구로 취급하던 사람에게 협박범으로서 로맨스 요소를 넣어가며 자극할 필요가 있을까?
굳이 속옷을 입고 그것을 촬영해서 보내는 정성에 대한 이해가 되질 않았다.
홍희주가 중간중간에 실수로 내뱉는 말이 본인도 자각하지 못했던 진심이어야 시청자에게 공감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그저 감정 없는 말실수라면 그건 홍희주라는 캐릭터 자체를 답답하게 보이게 만든다.
그리고 2화까지 보고 난 감상은 홍희주가 백사언에게 감정이 전혀 없었던 게 아니었다.
그런데 그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것은 각본부터 연기, 연출까지 모두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와서 그 감정을 표현해봐야, 1화에서 백사언이 자기가 죽든 말든 상관없다는 말에 받은 상처와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고 넘어 온 상태에서는 이미 큰 마이너스 요소다.
앞서 말한 인물들의 감정선을 잘 표현한 드라마에선 저런 장면이 나오면 어떤 기분이 들어야되는지 제작진들은 알까?
시청자도 가슴이 아리고 아파야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쳐지고 버려진 것 마냥 눈물이 나야 한다.
그 사람에게 일말의 기대를 갖고 있던 내가 너무 바보같고 처량하게 느껴져야 한다.
두번째는, 캐릭터의 매력을 모르겠다.
이건 앞선 첫번째 문제와 연관되는 부분도 있다.
나는 정말 홍희주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이해해야 되나에 대해서 계속 고민했다.
너무 상처받아서 냉정한 협박범이 되기로 결심한 듯 보였으나, 너무나 어설픈 협박범이다.
그런데 홍희주라는 캐릭터가 어설프고 허둥댄다는 설정이 앞에서 제대로 보여졌는가?
내가 보기엔 오히려 반대였다.
홍희주는 특별히 허당같은 모습을 많이 보여주지도 않았고, 오히려 단아하고 조용하고 반듯한 캐릭터의 모습에 더 가까웠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납치 사건 이후로 이제부터 달라지겠어, 같은 모습을 보여주길래 냉정하고 차가운 모습이 되나 했더니
전화하면서 쉽게 흥분하고 실수하고 갑자기 3년간 쌓아놓은 감정을 털어놓는 캐릭터가 되었다.
아마 원작에서는 캐릭터의 진짜 성격이 조금 더 자세하게 빌드업 되어있지 않았을까 싶은데, 드라마에서 이 모든 과정을 건너뛰면서 캐릭터의 매력이 없어졌고, 오히려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고 안 그래도 어려운 감정이입이 더 어려워졌다.
그래서 갑자기 말을 할 수 있게 된 첫마디가 욕설인 것조차 조금 이질적으로 다가왔다.
드라마는 1화와 초반부가 시청자들을 끌어모으기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캐릭터의 개성이 강하게 돋보여야 하고, 연출이 흥미롭게 흘러가야 한다.
그런데 그 모든 것에서 실패한 것으로 보여 아쉽다.
홍희주의 개성을 드러내는 장면을 조금 더 넣었어야 했고, 홍희주가 백사언을 볼 때 어떤 표정들로 보는지를 더 보여줬어야 했다.
당연히 그 표정에는 동경이든 뭐든 있어야 했다.
연출은 스릴러에 너무 초점을 둔 나머지 로맨스를 내다 버린 것 같다.
갑자기 생뚱맞게 로맨스가 튀어나와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인물들이 서로 그런 감정을 가질 요소가 조금이라도 있었는가? 그게 제대로 충분히 표현되었는가?
갑자기 침대에서 덮쳐지는 듯한 모습이 되고 식탁에 올려 앉히는 모습으로 로맨스가 생기는가?
가까이서 눈만 마주친다고 사랑에 빠지는가?
대체 어느 누가 그런 부분에서 아무 감정도 없던 사람에게 사랑이 싹트는가?
그 이전에 상대의 인간적인 모습, 상대의 좋은 모습, 상대의 열정적인 모습, 작지만 나를 위한 배려 이런 것들에서 호감을 가지는 게 당연히 먼저다.
캐릭터의 빌드업도, 로맨스에 대한 빌드업도 이뤄지지 않은 채 갑자기 생겨나는 로맨스는 대체 뭘 보여주고 싶은 걸까.
로맨스는 결국에 사랑에 빠져서 잘 살았습니다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사랑에 빠지는 과정도 매우 중요하다.
그 과정을 단순히 납치라는 사건만으로 만들려고 했다면 정말 로맨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거라고 말하고 싶다.
이미 기본적인 호감이 있는 상황에서 그 사건은 계기만 될 뿐이다. 그 사건 자체가 사랑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
홍희주에 대한 얘기만 한 것은, 2화까지의 내용 자체가 홍희주가 사건의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납치를 당하는 것도, 협박범이 되기로 한 것도 모두 홍희주의 감정에 따라 흘러간다.
백사언의 감정과 행동에 대한 이해는 현재로서는 이미 충분하다.
왜 백사언이 홍희주와 결혼하게 되었는지, 사실은 홍희주에게 마음이 있으면서도 왜 선을 긋고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지, 그녀를 납치했다는 소식에 사실 확인 후 마음을 놓는 듯 했으나 역시나 신경이 쓰였던 모습까지.
아직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렇게까지 차가운 모습으로 홍희주를 지켜야만 했던 이야기가, 그리고 언제부터 홍희주에게 마음이 있었는지가 나올 것이라고 믿는다. (설마 이 내용이 안 나온다면 드라마는 로맨스의 기본이 안 되어 있다고 본다.)
드라마의 현재 전개를 이해해보자면 홍희주도 사실 백사언을 최소한 동경하는 것 이상의 감정을 가지고 있었을 거고,
홍희주는 허둥대고 어리숙한 캐릭터일 것이다.
이걸 드라마에서 제대로 표현해주지 않아서 '아, 설마 그게 이걸 보여주려는 거였나?'라고 한참 생각한 뒤에야 알게 한다면 드라마의 표현력이 부족한 거다.
조금 더 시청자의 입장에서, 인물들의 감정선을 잘 표현하는 드라마가 되길 원한다.
그리고 넘어지는 거 빙글 돌면서 잡아주고 침대에서 덮치는 듯한 모습이 되고 이런 거 너무 작위적이다.
개그 요소면 개그 요소로만 가고, 개그 요소가 아니라면 굳이 넣지 않았으면 좋겠다.
앞서 말했지만 이미 감정선이 망한 상태에서 저런 장면들은 설레는 게 아니라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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