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네이버 영화선물을 통해 보게 된 영화. 무슨 내용인지도 모른 채 보기 시작했다. 영화는 칠레의 한 사막에서 광산 붕괴로 지하 깊은 곳에 갇힌 33명의 광부들과 69일에 걸친 이들의 구조 이야기이다.
처음에 너무 많은 인물이 등장했고, 영화 분위기도 어수선해서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하지만 곧 긴박하고 긴장감 있는 상황에 몰입하여 재밌게 본 영화였다.
재밌었다고는 하지만, 극적인 상황을 만들기 위한 장치들이 너무 뻔했고, 그리고 너무 많은 등장인물로 인한 인물 몰입도와 공감도가 떨어지는 부분은 아쉬웠다.
영화 시작부분의 행복한 인물들의 모습은 후에 극적인 상황을 연출하기 위한 장치였다. 광부들과 광부들의 가족. 은퇴를 2주 앞 둔 광부도 있었고, 곧 출산할 아이와 아내를 가진 광부도 있었다. 아내와 딸이 있는 광부, 가족 중 누나만 있는 광부, 그리고 볼리비아에서 칠레까지 와서 첫 출근을 하게 된 광부까지.
이미 광산 붕괴는 조짐이 있었다. 함께 일하는 광부들을 책임지는 십장은 물론, 다른 광부들도 하루이틀 일해 본 게 아니기 때문에 알고 있었다. 그리고 33명이 지하 500m보다 깊이 들어갔을 때, 광산은 붕괴한다.
빠른 속도로 트럭과 차에 올라 타 광산 붕괴에서 33명의 광부는 모두 살아남는다. 약간의 부상자는 있긴 했지만 대피소로 이동한다. 이 과정이 참 비현실적이었다. 어느 영화에서나 그렇겠지만, 붕괴속도보다 이동 속도가 빠르다는 게 현실감 없었다. 그리고 굳이 33명이 다 살아남는다는 것도. 그런데 이 영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그렇기에 기적이라고 부를 수 있겠지만.
대피소는 지하 700m 깊이에 위치한다. 이들이 대피소까지 길을 뚫는데 백 년이 걸렸다고 한다. 대피소에 있는 식량은 고작 3일치. 그리고 라디오는 고장나있었고, 환기구로 통하는 사다리는 제대로 설치조차 되어 있지 않고 중간에 끊겨 있었다. 처음 기업의 태도에서부터 알 수 있었지만, 기업은 이들의 안전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대피소에서 식량을 발견하고, 다리오는 점심시간이 되었다면서 식량을 그냥 막 먹는다. 이 부분도 현실감 없었다. 언제 구조될 지 모르는 상황에서 배고프다고 막 먹는 건 너무나 비합리적인 행동이었다. 어떻게든 아껴먹어야 하는게 일반 사람에겐 상식이다. 한 차례 싸움 후 다리오에게 이 상황을 납득시켰고 3일치 식량을 16일 가까이 쪼개서 먹게 된다. 적은 구호용품으로도 부상자까지 있는 상황에서, 광부의 직업병까지 있는 상황에서 그만큼 버틴 것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한편, 밖에서는 광산 붕괴 소식에 가족들이 달려왔다. 가족들이 오기만 했다. 아무런 구조 조치도 취해지지 않고 있었다. 기업에서 구조를 할 돈이 없었다. 결국 칠레 정부에서 광업부 장관이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이 사람은 광산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다. 처음에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흔한 정치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당장 구조를 시작해도 모자랄 판에 너무나 답답한 상황이었다. 유명 방송인이 광산붕괴 현장에 오고 나서야 정부는 본격적인 조치를 취해 준다. 지질전문가를 구조 현장에 투입하고, 시추 드릴을 전적으로 지원해주었다. 기업이 능력이 없다면 당연히 처음부터 바로 정부에 도움을 요청했어야 했고, 정부는 즉각적으로 전문가와 장비를 보냈어야 했다. 구조 작업을 위한 시추를 시작한 게 3일이 지난 후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 3일이 대피소 사람들의 생사를 갈랐을 수도 있다. 시추의 오차로 인해 구조가 성공할 가능성은 1%도 되지 않았다.
영화의 광부들은 놀랍도록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모습을 보인다. 식량상자의 열쇠를 가진 마리오가 식량을 늘 균등하게 배분했다는 냉정함도 놀랍다. 33명이 그런 공간에 있다 보면 비이성적인 행동이 나올 수밖에 없는데 이들은 굉장히 절제를 잘 한다. 중간중간에 식인을 생각하는 모습이나 환각증세를 보이는 사람도 있지만 다른 사람의 말 몇마디에 이들은 정신을 차린다. 이것도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극적인 상황에서 그렇게 다른 사람 말을 잘 듣게 될까.
8일? 9일?에 걸친 첫 시추는 실패했다. 암석의 밀도로 인해 시추의 방향에 문제가 생긴 듯하다. 33명을 구해야한다는 사명에 불타던 지질전문가는 희망을 놓아버렸다. 오히려 말만 그럴듯하게 하던 광업부 장관은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들의 모습에서 그들을 구해야한다는 사명에 불타올랐다. 그리고 삶을 노래하는 누군가의 노래로 이들은 깨달음을 얻고 다시 구조 작업을 시작한다. 이전의 실패를 토대로 시추 방향을 다시 잡는다. 지질전문가와 광업부 장관의 태도가 바뀐 것도 개연성은 있었지만 그렇게 와닿지는 않는 부분이었고, 노래 하나로 다시 힘을 합친다는 이야기도 내게는 비현실적이었다. 포기하지 않는 게 맞지만 저들의 심리 변화에는 공감할 수 없다.
그들이 살아있을 거라는 희망을 놓아서는 안 된다. 당연히 단 한 사람의 살아있을 사람을 위해서, 모두의 시체를 건져올리게 되더라도 구조작업은 계속 해야 맞는 것이다. 그게 희망과 기적을 만드는 길이다.
두 번째 시추는 성공했다. 33명의 광부들이 이미 삶의 의욕을 잃어가던 즈음이었다. 조금만 더 지났다면 이들은 삶을 포기했을 것이다. 시추 구멍이 작아서 저걸로 어떻게 구조하나 했는데, 그 관을 통해서 각종 식량과 물품이 전달되었다. 그리고 가족들과 영상통화가 가능해졌다.
33명이 모두 살아있는 것이 확인되자 해외에서도 적극적인 드릴의 지원이 이어졌다. 그러나 중간에 차지한 암석이 섬록암인지라, 여러 드릴이 고장났다. 광산 지지대가 중간에 위치하기까지 하면서 구조 작업에는 어려움이 계속되었다. 광산은 여전히 굉장히 불안정한 상태였다. 강철 파편을 제거하기 위한 대형 자석도 투입되고 여러 고난을 겪으면서 결국 구조에 성공한다. 마지막 구조자가 남았을 때는 광산이 붕괴하는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무사히 구조되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기업은 무죄판결을 받았고, 33명의 광부는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33명의 광부 중 3~5명의 이야기에 치중되어 있다는 점, 극한 상황에 맞지 않게 다들 침착하게 대응한다는 점이 아쉬웠다. 그리고 저런 상황을 겪고도 계속 광부로 살겠다고 하는 태도는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영화는 기업이나 정부에 대한 비판보다는 가족의 사랑에 더 중점을 두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한다. 그래서 다리오와 마리아 남매가 자주 나온다. 마지막 식량을 가지고 최후의 만찬이라며 가족들의 모습을 떠올리는 모습도 그런 연출이었다. 그들에겐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 가족의 사랑이 담긴 음식이 필요했고, 음식보다는 가족들을 보고 싶어했다.
가장 불쌍했던 인물은 볼리비아 출신의 첫 출근을 한 마마니였다. 은퇴를 앞둔 사람, 태어날 아이가 있는 사람 등 불쌍한 요소는 다 있었지만, 볼리비아인이라고 무시당하면서 처음 이런 일을 겪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그래서 영화 막판에는 마마니에게 말하는 "첫 출근이 많이 힘들었지? 앞으로도 야근 할 일이 많을 거야."라는 대사가 나온다.
첫 출근 후 69일 만에 퇴근하는 마마니였다. 솔직히 나 같으면 광산에 대한 공포 때문에 다시는 광부 일을 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69일이나 함께 있었으면 사람 좀 그만 무시하자... 함께 지낸 시간이 얼마인데...
재난 영화를 좋아한다면 한번쯤은 그냥 재미에만 치중해서 볼 영화인 것 같다. 지질학적 지식이 그렇게 많이 나오지는 않는다. 아무튼 이러나 저러나 33명 전원이 구조된 게 실화라고 하니까.. 비현실적이고 뭐고 내 비판은 아무 쓸모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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