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오백에 삼십은 보증금 500에 월세 30을 내는 건물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코미디 연극이다. 건물주와 세입자들의 갈등이 주요 소재로 나온다.
연극을 보고 싶다는 친구와 함께 대학로에서 보고 왔다. 주변에서 강력하게 추천하기도 했고 후기도 괜찮고 예매율 2위의 연극이라고 해서 기대도 했었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90% 이상의 사람이 재밌었다고 말하고, 추천도 많고, 함께 간 친구의 반응과 연극 후 관객의 반응을 봤을 때 나의 평가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 같다.
왜 나의 평가만 다른지에 대해 계속 생각해 보았는데 나의 몰입도가 다른 사람보다 낮았거나, 나의 개그코드가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좌석은 객석의 사이드 부근이었다. 무대와 가까운 시선으로 인물들에게 몰입할 수 있는 앞좌석과는 달리, 제3자의 시선으로 보게 되는 자리이다. 인물들에 대한 감정 이입보다는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지와 인물이 특정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할지를 예측하며 보게 되었던 것 같다. 그 사건 방향이나 인물의 반응이 내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기에 나의 흥미는 떨어졌다. 마지막 반전을 제외하고는 다 어느 정도 예상 범위였다. 계속 웃음을 선사하기 위한 끊임없는 엉뚱한 행동과 말조차 나의 예상 범위였다. 이것이 코미디 연극임을 알고 왔기 때문이다.
개그코드가 특이하다는 소리를 가끔 듣는다. 남들이 웃지 않는 일에 웃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남들이 다 웃는데 안 웃는 건가 하면 그건 잘 모르겠다. 모두가 빵 터지는 순간에는 나도 빵 터진다. 그러니까 보통 예상치 못한 순간에 예상치 못하지만 매우 찰진 드립을 보면 함께 웃는다. 하지만 개그 프로를 보면서 크게 웃은 적은 별로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웃기기만을 작정하고 웃기는 것에는 반응을 잘 하지 않는 것 같다. 그게 아마 내가 코미디 연극을 보면서 남들만큼 웃지 못하는 이유가 아닐까. 그리고 하나 더, 오백에 삼십은 비속어를 이용한 개그 요소가 굉장히 많다. 그런데 나는 비속어 자체를 굉장히 좋아하지 않는다. 아마 이것이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요소였던 것 같다. 그리고 발음을 제대로 못 들어서 웃는 타이밍을 놓치기까지 했다(ex 배심원). 기억에 남는 개그는 당나라와 폴라포뿐이다.
개그코드가 다양한 만큼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기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나는 만족하지 못했지만 나쁜 연극이라고는 말 못하겠다. 다수를 만족시킨다는 사실은 맞으니까. 함께 간 친구는 돈 벌어서 쓰는 재미를 오랜만에 찾았다고 했다.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는 훌륭했다. 이 부분에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어디까지가 대본이고 어디까지가 애드리브인지도 헷갈릴 정도였다. 저건 정말 즉흥적으로 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오백에 삼십은 사회적 문제를 담고 있기도 하다. 가장 강조된 건 다문화가정에 대한 인식이었던 것 같다. 불법체류자, 외국인 노동자, 베트콩, 얼마에 사 왔니, 이 말들이 전부 건물주가 가난한 한국남자 허덕과 결혼한 베트남여자 흐엉마이에게 붙인 말이었다. 그들이 어떻게 만나 어떻게 결혼했는지 모르는 제3자는 그것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설령 진짜 돈이 급해서 시집을 온 것이라고 해도, 그들을 비난할 자격은 없다. 아무도 모르는 남의 나라에 와서 가족들과 떨어져 살아야 할 정도로 절박한 그들에게, 가족을 위한 그 마음을 대체 누가 비난할 수 있는가. 그들은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 그들이 남에게 피해를 준 것은 없다. 세상이 그들을 궁지로 내몰았을 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런 상황에서도 행복을 만들어나간다.
이외에도 고시생과 몸을 파는 여자, 그리고 갑의 위치에서 군림하는 건물주의 모습, 돈으로 사람까지 사려는 물질만능주의를 풍자하거나 비판하는 내용이 들어가 있었다.
11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과, 시작 전에 진짜 떡볶이를 줬다는 점이 연극의 특이점으로 기억에 남는다. 러닝타임이 너무 길어서 110분 내내 웃기려는 시도가 나에게는 조금 피곤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다음에는 다른 장르의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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