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소설 같은, 영화 같은
  • 사랑을 꿈꾼다

[책 리뷰] 냉정과 열정 사이 - Rosso

by 미뉴르 2019. 11. 24.
냉정과 열정 사이 Rosso
국내도서
저자 : 에쿠니 가오리(Kaori EKUNI) / 김난주역
출판 : 소담 2015.11.25
상세보기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이다.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 그러니까 이 블로그를 한창 쓰고 일본 소설에 빠져 있을 무렵 이 책에 대해 어디선가 들었다. 내용을 들은 건 아니지만 제목 정도는. 그리고 책을 빌리려고 시도했는데 실패했는지, 빌렸는데 다 읽지 못하고 반납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읽지 못했다.

 이제서야 몇 년 만에 책을 다시 손에 잡고 독서 모임을 시작하면서 이 책을 찾게 되었다. 사실 그냥 잊어버릴 수도 있었을 텐데 이 책의 어떤 구절을 다른 사람에게서 듣고 이걸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무작정 책을 빌렸다. 두 가지 버전이 있다는 얘기를 예전에 어렴풋이 들은 것도 같으나 그걸 여지껏 기억하고 있을 리가 없다. 기억했다고 한들 책 자체가 분리되어 있는 줄은 몰랐다. 한 책에 두 버전이 다 실어져 있을 거라 여겼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빌리고 보니 에쿠니 가오리의 냉정과 열정 사이 여자 버전 - Rosso 편이었다.

 

 처음에 이야기의 주인공은 아오이와 마빈이라고 생각했다. 대체 왜 이게 두 버전이 필요할까 - 둘 중 어느 쪽이 문제인 걸까 아니면 둘 다 문제인가 - 라는 생각을 가지고 인물들의 행동을 비판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연인 사이라는 게 삐딱하게 보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보일 수 있다는 위험을 감수하고 말이다. 그리고 4분의 1쯤 읽었을 때, 문제는 아오이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두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아주 작은 행동들, 생각들, 태도들에서 아오이가 마빈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책 속의 다른 인물들도 그렇게 느꼈고 말이다.

 

 

 

 "마빈의 어디가 좋은데?"

 대신 그렇게 묻는다.

 "올바른 것."

 나는 잠시 생각하고서 그렇게 대답했다.

 "올바른 것?"

 "네. 그리고 허벅지."

 안젤라는 또 내 얼굴을 본다.

 "허벅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굉장히 멋져요."

 "정말?"

 그럼 다음에 잘 봐 두어야겠네. 안젤라는 심각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중략)

 나는 이 사람의 어디를 좋아하는 것일까.

 올바른 것. 물론 그렇다. 마빈은 공정하고 명석하다.

 허벅지. 이건 절대적이다. 마빈의 허벅지는 정말 아름답다.

 기지.

 관대함.

 차분한 말투.

 그리고 …….

 (p.44~45 中)

 여기서 느낀 것은 어떤 점이 좋은 지를 '생각해야 한다', '찾아야 한다'라는 것이었다.

내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이 질문의 답은 "그냥."이라던가 "그 사람이라서."이기 때문인지, 구구절절 나열하고 설명하려고 하는 순간부터 얼굴을 찌푸리게 되었다.

 그 허벅지가 아니었으면 그를 사랑하지 않았을 것인가? 올바르지 않았으면 그를 사랑하지 않았을 것인가?

질문을 바꿔보자. 허벅지가 멋지고 올바르고 공정하고 명석하고 기지, 관대함, 차분한 말투 그 모든 것을 똑같이 지닌 다른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도 사랑하게 되는 것인가?

 

 마빈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이 도시에 대해서도. 나에 대해서도.

(p. 49 中)

 아오이가 마빈에 대해서 생각했던 부분이다. 나는 여기에도 질문을 하고 싶었다. 알지 못하는 것을 왜 알려주려고 하지 않았는가? 읽을수록 느끼는 것은 아오이는 마빈에게 말하려 하지 않는 것이 많다.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떠올리기에 아픈 기억이라서, 그냥 말할 기분이 아니라서 등 이유는 많다. 하지만 그 이유는 결국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그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니까.

 

 

 - 소유는 가장 악질적인 속박인걸요.

 내가 말하자 마빈은 보일락말락 어깨를 으쓱 올린다.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고, 메이비, 라고 중얼거린다.

(p. 50 中)

 

 애써 명랑한 목소리로 말한다.

(p.51 中)

 

 그런데도 나는 마빈에게 꿈 얘기를 하지 못한다.

(p. 54 中)

 

 그녀는 얼마나 이기적인 사람이었는가. 소유는 가장 악질적인 속박이라는 저 말로 마빈은 매달리고 소유하고 싶다는 마음조차 가질 수 없게 되었다. 확신을 주지 않는 아오이가 언제든 떠나갈 수 있다는 말처럼 들렸을 것이다. 그럼에도 부정할 수 없었다. 뒤로 갈수록 마빈은 불안해한다. 그러나 결정적인 그 순간까지 아오이를 항상 용서해준다. 그게 그의 사랑방식이어서 너무 안타깝다. 아니, 아오이가 결국 그를 사랑하지 못해서 안타깝다.

 솔직하지 못한 그 모습들이, 자꾸 감추려는 그 행동들이 낳은 결과는 결국 모두를 잃었다. 상처를 주었고 상처를 받았다. 예전에 읽었다면 아오이에게 더 공감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아오이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려다 스스로도 그 감정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 주변에 상처를 준 사람이다. 정말 알지 못했다고 할 수는 있는가? 그저 쥰세이를 만날 수 없는 현실에서 마빈에게 의지하고 위로받으려고 했던 건 아닌가?

 이걸 다 읽었을 때, 아오이에게 화가 났고, 쥰세이의 이야기보다 마빈의 입장에서 쓰여진 이야기가 더 궁금했다. 마빈의 입장이라면 더 공감하고 슬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후반부에야 등장해서 모든 것을 파괴하는 쥰세이나 그런 것에 흔들리는 아오이보다는 훨씬 더.

 

 - 도쿄에서의 아오이는?

 마빈이 느닷없이 그렇게 물은 것은, 자리를 거실로 옮긴 후였다.

 - 도쿄 얘기도 듣고 싶은데. 같은 대학에 다녔잖나?

 나직한, 그러나 의지가 담긴 목소리로 마빈이 말했다. 순간 모두, 안젤라까지도 침묵했다.

(p. 112 中)

 결국 터졌다. 그동안 궁금해도 더 묻지 않던 마빈이, 아오이가 말하지 않는 과거를 알고자 했다. 연인이라면 과거를 궁금해하는 마음은 이해할 수 있다. 과거에 누구를 만났느냐를 물은 것도 아니다. 그저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궁금해했을 뿐이다. 그녀가 말할 수 없었던 게 도쿄 그 자체가 쥰세이였기 때문인지 그녀가 그저 아프고 싶지 않기 때문인지 묻는다면 나는 후자라고 느꼈다. 그래서 그녀가 더 이기적으로 느껴졌다. 그 상처를 마빈은 보듬어줄 수 있었다. 충분히 그런 사람이다. 마빈이 원했던 것은 아오이의 사랑, 솔직함, 신뢰였으니까.

 

 "당신은 너무 친절해요."

 "왜 나의 친절에 죄책감을 느끼는 거지?"

(p. 141 中)

 너무 슬픈 장면이었다. 그는 사랑하기 때문에 친절했고, 그녀는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꼈다. 그만큼 돌려줄 수 없는 그녀는 부담을 느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상처 받을 것을 알고도 사랑했던 그가 너무 안타까웠다.

 

 

 

 

 결국 아오이는 마빈에게서 돌아서고, 쥰세이와 10년 전 약속을 지켰다. 그래서 둘이 다시 사귀게 되었는가 하면 그건 아니다. 그랬으면 정말 화날 뻔했다. 결말은 좀 더 현실적이었다. 자신의 감정에 휘둘리기보다는 현실을 마주하는 모습. 그것이 진정한 냉정과 열정 사이가 아니었을까 싶다. 열정과 냉정의 적절한 조화 말이다.

 

 이제 아오이에 대한 비판은 여기까지.

 

 

 

 - 책은 좋아하면서, 정작 사지는 않는단 말이야, 아오이는.

 마빈은 종종 이상스럽게 여긴다.

 - 읽고 싶을 뿐이지, 갖고 싶은 건 아니거든요.

(p. 49 中)

 '아!' 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나는 책을 그리 좋아하진 않지만 어쨌든 어떤 책을 읽던 사지는 않는다. 나에게 그 이유는 2번 읽을 책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두고두고 읽을 것이 아닌데 왜 돈을 들이고, 책장에 자리를 차지하고 두다가 결국 버리게 되느냐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 결국 갖고 싶은 건 아니니까.

 

 "사람의 있을 곳이란, 누군가의 가슴속밖에 없는 것이란다."

(중략)

 누군가의 가슴속.

 비 냄새 나는 싸늘한 공기를 들이키며, 나는 생각한다. 나는 누구의 가슴 속에 있는 것일까. 그리고 내 가슴속에는 누가 있는 것일까. 누가, 있는 것일까.

 쥰세이가 보고 싶다, 고 생각했다. 쥰세이를 만나 얘기하고 싶다. 다만 그뿐이었다.

(p. 211 中)

 

 다니엘라가 있는 밀라노, 파울라와 지나가 있는 밀라노. 내일부터 나는 나의 생활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된다. 일을 하고, 끝까지 친절하였던 마빈을 보내고, 처음부터. 사람은, 그 사람의 인생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이 있는 장소에, 인생이 있다.

(p.253 中)

 사람은 누군가의 가슴 속에 있고, 그곳에 그 사람의 인생이 있다. 쥰세이와 아오이가 각자의 삶을 계속해서 살아가기로 한 이유이리라. 더 이상 서로가 인생의 중심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인생의 중심임을 알았기 때문에.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의 매력이지"라고 말한다.

 "변한다는 것도."

(p. 125 中)

 장점이 변하지 않는 것과 단점이 좋은 쪽으로 변한다는 것. 그래 모두 좋은 것이고 매력이다. 그렇게 사람은 변하는 부분과 변하지 않는 부분을 가지고 살아간다. 항상 옳은 것, 항상 그래야 하는 것은 없다. 변하는 게 좋은 것도, 변함없는 게 좋은 것도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I was so in love with him

이 말을 곱씹으며 아오이는 마빈에게 전화를 했지만 아마 쥰세이를 사랑했음을, 사랑하고 있음을 느꼈을 것이다.

 

 

17.08.28 본인 작성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냉정과 열정 사이 쥰세이편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책 리뷰] 냉정과 열정 사이 - blu

책 추천이 필요하다면

책/영화를 선정하는 기준 및 참고 사이트

이전 도서 후기가 궁금하다면

[책 리뷰] 도쿄 게스트하우스

블로그의 전체 리뷰 목록을 보고싶다면

전체 리뷰 목록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 리뷰] 정체성  (0) 2019.12.01
[책 리뷰] 냉정과 열정 사이 - blu  (0) 2019.11.29
[책 리뷰] 날개 꺾인 너여도 괜찮아  (0) 2019.11.25
[책 리뷰] 도쿄 게스트하우스  (0) 2019.11.23
[책 리뷰] 검은 고양이 네로  (0) 2019.11.2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