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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날개 꺾인 너여도 괜찮아

by 미뉴르 2019. 11. 25.
날개 꺾인 너여도 괜찮아
국내도서
저자 : 안 이카르(Anne Icart) / 장소미역
출판 : 문학동네 2017.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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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디선가 들어본 제목, 익숙함에 이끌려 책을 빌리게 되었다. 날개가 꺾인다는 표현은 가끔 보던 것이니까.

엄청 얇아서 3시간 만에 완독했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읽으면서 눈물이 맺혔던 책, 날개 꺾인 너여도 괜찮아였다.

 

 구강 안면 신경 장애. 정신운동 지체. 발달 장애

이것이 책에서 '너'로 지칭하는 화자 안의 오빠, 필리프의 건강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다.

 

 이야기는 필리프와 안이 아기였던 시절, 아빠가 이들에게 동화를 들려주고 이들이 꺄르르 웃으며 즐거워하던, 서로 몸을 맞대고 함께 잠들던 시절부터 시작한다. 서로의 체온을 느끼고, 서로의 존재를 느끼는 그런 소중한 관계였다.

 

 그런데 안이 일곱 살이 되었을 무렵, 필리프가 안과 다르다는 것을 엄마로부터 듣게 된다.

그때도 안은 그 말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둘은 여전히 소통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필리프는 안에게 있어서 영웅이었는데, 보호자였는데....

 

 너무나도 많은 구절들이 장면들이 마음에 와 닿았다. 아마 꽤 긴 리뷰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책 전체를 써야 할 정도니까.

 

 

 

 아빠가 퇴근하실 무렵 우린 이미 침대에 누워 있었지만 아직 잠이 들진 않았어, 옛날이야기를 들으려고 아빠를 기다렸지.(중략) 네 목소리는 아주 작고 날카로웠는데 아빠가 전날과 다르게 이야기를 할라치면 부르짖듯 정정을 했지. "늑대, 늑대, 늑대!" 늑대가 빨간 두건 소녀의 할머니를 삼켜버리면 어찌나 가슴이 뛰던지. 난 네 말을 죄다 그대로 따라했어. "늑대, 늑대, 늑대!"

 "늑대, 늑대 늑대!" 아빠는 문을 닫으며 쉿 하고 주의를 주셨지만 손가락을 댄 입술은 웃고 있었지.

 티누프는 어느 날 밤 갑자기 어른이 돼버려. 다음날 몸에 맞는 옷이 하나도 없자, 새 옷을 사줄 수밖에 없게 된 티누프의 엄마는 아이를 데리고 오스만 대로에 있는 쇼핑센터로 데려가지. 넌 아빠 엄마의 차를 타고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차창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는 소리를 질렀어. "티누프네 집이다, 티누프네 집이다!"

(p. 14中)

 너무나 천진난만했다. 너무나 행복했다. 너무나 평화로웠다. 이렇게 행복했던 남매에게, 행복했던 가정에 고통이 찾아왔다는 사실이 너무나 가슴아팠다. 

 

 난 왜 우리가 그곳에 가는지 몰랐어. 네가 말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라고 엄마가 설명해주시긴 했지만 나한텐 이상한 얘기로 들렸지. 우리 둘이서는 의사소통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니까.

 엄마는 예쁘셨어. 얼마나 예쁘던지.(중략) 그때가 서른여섯이었나. 아무튼 난 그렇게 알았고 이런 말을 달고 살았어. "엄마, 나한테 엄마는 항상 서른여섯 살이야." 엄마가 서른여섯일 때, 난 채 세 살이 되지 않았어. 그때 무슨 일인가가 일어났던 거야. 시간을 멈출 무슨 일인가가.

(p. 16~17中)

 이 말이 슬펐다. 엄마가 아름다웠다는 밝은 얘기를 하다가 이렇게 슬픔으로 자연스럽게 연결시킨다. 아주 담담하게. 이 책은 전반적으로 이런 식이다. 그렇게 그들의 행복한 시간이 멈춰버렸다.

 

 엄마는 네가 감기에 걸린 게 아니라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렸다고 말씀하셨어. 너는 늘 그 모양일 거고 늘 우리를 필요로 할 거라고.(중략) 그때 내 귀에 들어와 박힌 말은 네가 영영 낫지 않으리라는 거였어. 그러니까 너는 영웅, 나의 영웅이 아니라는 거였지. 내가 어둠이나 문어같이 생긴 외계인을 무서워할 때 나를 안심시켜줄 든든하고 다정한 오빠가 아니라는 얘기였어. 그동안 단어들이 너의 입가에서 좌충우돌한다거나 걸음걸이가 위태롭다거나 행동이 늘 굼뜨다는 건 의식하지 못했는데. 오빠 너는 나의 영웅이었는데. 나는 무조건적인 찬탄에 눈이 멀어 그 모든 걸 전혀 보지 못했다는 거야. 내 사랑하는 오빠. 한순간 세제 거품 언덕이 무너져내리고, 우유 거품이 냄비 위로 흘러넘쳤어. 내 상태도 냄비와 똑같았지. 불에 그을리고, 코까지 물이 찬 것 같이 숨이 막히고, 흘러넘치는 무엇을 주체할 수 없는 상태.

 그럴 리 없어. 엄마가 착각하는 거야. 그럼 더 이상 오빠 너를 사랑할 수 없잖아. 세상이 이런 식으로 무너져내릴 수는 없는 거야. 왜 내가 이 모든 현실에 눈떠야 하지?

 하지만 세상의 엄마들은 절대 틀리는 법이 없다는 걸 배워야 했어. 그날 그 순간부터 나는 거의 매일 저녁 죽음을 떠올렸어. 그리고 세상의 종말도. 그런 걸 일컬어 불안이라고 한다는 걸 그땐 아직 몰랐고 나중에야 알았지. 여하튼 그때부터 정체 모를 불안이 시작되었어. 네 날개가 꺾인 그때부터. 아울러 나의 꿈도 꺾였지. 쾅!하고 폭발하며 허망하게 스러지는 지옥 같은 지구의 환영이 눈앞에 어른거렸어. 세상 모든 것이 불길 속으로 영원히 사라져버리는 대혼란. 아무도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어. 난 절망감을 혼자서만 간직했어. 마음속 깊이 꼭꼭 숨겨놓았지. 난 아주아주 상냥하게 굴려고 애썼어. 오빠 너를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았어. 외려 그 반대였지.

(p. 28~29中)

 오빠가 다르다는 걸 깨달았을 때, 영웅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을 때 안의 세상은 무너졌다. 그것을 이런 식으로 묘사하고 표현할 수 있다니 놀라웠다. 그리고 어렴풋이나마 느껴지는 그 감정에 너무 안타까웠다. 그래도 안은 오빠를 사랑했다. 그래 더욱더 사랑했다.

 

 필리프는 천성이 밝은 아이였고, 씩씩한 아이였다. 그리고 어릴 적 그의 친구들, 그의 친척들은 그의 장애와 관계없이 그를 사랑했다. 그랬다.

 

 엄마는 입버릇처럼 내게 말씀하셨어. 난 너보다 엄마가 덜 필요하다고. "넌 정상이잖니." "넌 정상이잖니." "넌 정상이잖니." 정상인 건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거야. 엄마를 내게서 멀어지게 했으니까.

 아빠는 입버릇처럼 내게 말씀하셨어. 인생에서 무언가를 이루고 싶다면 더욱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넌 정상이니까." "넌 정상이니까." "넌 정상이니까." 정상인 건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거야. 그에 걸맞게 열심히 공부하지 않아서 아빠를 실망시켰으니까.

(p. 61 中)

  안은 필리프를 단순히 동정하지만은 않았다. 자신이 그로 인해 무엇을 잃었는지 알고 있었다. 정상이라는 말이 장애라는 말보다 더 어렵다고 말했다. 정상이라는 이름 하에 의무가 생긴다. 권리를 뺏긴다.

 

 주말엔 집에 왔어. 종종 여기저기 멍이 든 채. 너와 한방을 쓰는 동기들은 반박당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고 넌 노련한 매질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법을 몰랐지. 방어하려는 생각조차 못 했으니까.

 난 살의를 느꼈어. 하지만 무력했지. 네 상처의 구경꾼이었을 뿐, 아무짝에도 쓸모없었어.

 일류 장애인고용지원센터에서는 널 원하지 않았어.

(중략)

 엄마가 흐느끼며 울부짖었어. 정신 나간 사람 같았지. "차라리 내 손으로 죽여버릴래, 베개로 질식시켜 죽이고 나도 따라 죽어버릴래."

 네가 지긋지긋해서 나온 소리가 아니었어. 네가 불행했기에, 네가 불행한 걸 참을 수 없었기에 나온 소리였어.

(p.64~65 中)

  이 책에서 가장 슬펐던 장면이었다. 필리프가 직업을 가지기 위해, 일류 장애인고용지원센터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집을 떠나게 된다. 이유는 가족들과 함께 살지 않을수록 취업이 잘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를 기숙사로 보내게 되는데, 주말마다 집에 돌아오는 필리프는 항상 멍투성이였다. 그곳에서 폭행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족들은 그것을 보면서도 무력하다. 아무 잘못이 없는 그가 불행해지는 것을 지켜보며 괴로워한다. 그리고 그는 취업도 실패한다. 그의 불행에 모두들 아파한다.

 왜 그가 아파야 하는가, 왜 그가 불행해야 하는가. 대체 왜, 세상은, 사회는 왜 이렇게 약자들에게 엄격한 걸까. 왜 그들에게만.

 이후 가족들은 더 이상 필리프를 기숙사에 보내지 않기로 결정한다. 그게 그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고 그에게 상처만 준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마 이 모든 얘기를 네게 처음 하지 싶어. 네가 내 얘기엔 관심 없을 거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박혀 있거든. 대개 내가 무언가를 보여주면 넌 삼십 초쯤 관심을 보이는가 싶다가 이내 너만의 세계로 떠나버리니까. 어쩌면 내가 틀렸는지도 몰라. 어쩌면 넌 관심이 있고 재밌는 건지도. 어쩌면 다만 너와 나, 우리의 시간 관념이 다를 뿐인 건지도.

(p. 70 中)

  감탄사. 와. 이게 속으로 내지른 반응이었다. 그저 서운해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이해하는 새로운 생각. 우리의 시간 관념이 다르다. 그는 그 나름대로 충분히 관심과 애정을 표현하고 있다. 자신의 잣대가 아니라 그의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주는 이 태도가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여준다.

 

엄마만이 더욱 깊은 우울증에 빠져들었어. 네가 다시 우리와 가까워진 것에 행복해하시긴 했지만 충격이 너무 컸던 거야. 이별이 너무나 갑작스러웠던 거지. 엄마는 점점 내면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 헤어나올 줄 몰랐어. 혼자서는.

 "엄마? 엄마, 괜찮아요?"

 엄마는 거실의 안락의자에 앉아 있어. 벽난로 오른쪽의 늘 같은 자리. 초록색 우산을 씌운 크고 깊은 안락의자에, 두 눈을 감은 채. 나는 억장이 무너져내리며 목이 메어오지.

 난 욕실로 달려가. 이럴 때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니까. 세면대 옆에 굴러다니는 약통을 열어 파란 알약의 개수를 세어봐. 얼마 남아 있지 않아.

 난 엄마 발치에 무릎은 꿇고 엄마의 손등을 쓰다듬어.

 "엄마…… 엄마, 나예요. 눈 좀 떠봐요……"

 내 눈물이 엄마의 손등에 뚝뚝 떨어져. 엄마가 눈을 떠서 날 쳐다보지만 날 보는 게 아니야.

 "엄마, 제발, 이러지 마세요…… 제발, 엄마…… 무섭게 왜이래요. 엄마 죽는 거 싫어…… 엄마, 무서워요…… 너무 무서워요……"

 엄마가 미소를 지으셔.

 "엄마 안 죽어, 아가…… 그냥 좀 다 잊고 싶어서 그래……"

 난 비명을 지르기 시작해. 흘러내리는 엄마의 눈물을 바라보며 내 눈물을 마시지.

 "아니, 자꾸 이러면 죽어, 엄마!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래요? 엄마가 삼키는 그 알약들이 정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제발 정신 차려요! 그 약들이 엄마를 죽이고 우리를 죽이고 말 거라고요! 엄마, 엄마, 노력 좀 해봐요, 제발…… 노력을 해, 엄마, 제발…… 날 사랑하잖아, 그렇지 않아요? 정말 날 사랑한다면 이 약들을 끊어야 해요……"

 "넌 이해 못해…… 날 내버려두렴……"

 난 엄마를 내버려뒀어. 그리고 약들을 쓰레기통에 버렸지. 난 이해하려고 노력했어. 하지만 내 분노를 가라앉히기에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했어.

(p.72~73 中)

 이 장면에서는 안의 심정이 너무나 공감되었다. 예전에 엄마가 우울증을 앓았던 적이 있다고 했다. 당시의 나는 너무 어려서 몰랐다. 그 시절을 극복하고 나서야 엄마에게 들은 얘기였으니까. 우울증이 정말 심해지면 죽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고 했다. 사랑하는 가족? 사랑하는 자식? 그런 건 생각도 안 나더랜다. 그냥 지금 이 순간이 너무 견디기 힘든 나머지 죽어버리고 싶었다, 라고 그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그 당시 더 컸더라면, 아마 이런 대화가 오고 가지 않았을까. 나는 화를 냈을까, 울었을까, 포기했을까. 과연 무언가를 할 수 있긴 했을까.

 

 

 

이밖에도 수많은 글에 감동받고 아파했고 미소 짓기도 했지만, 여기서 마지막으로 끝내려고 한다.

책의 초반부와 마지막에 나왔던 안과 필리프의 대화를 끝으로.

 

 그 곳에서 우리는 한 방을 썼고 네 침대는 또다시 내 침대와 대각선으로 비스듬히 놓였지.

(중략)

 "필리프?"

 "왜?"

 "자?"

 "응."

(p. 39 中)

 

 언젠가는 우리 둘만 남아 철저히 외롭다고 느끼게 될 거야. 하지만 난 너를 절대 혼자 두지 않을 거야.

 우리의 침대를 다시 대각선으로 비스듬히 놓을 거야.

 "필리프?"

 "왜?"

 "자?"

"응."

(p. 148 中)

 

 

17.09.24 본인 작성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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