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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냉정과 열정 사이 - blu

by 미뉴르 2019. 11. 29.
냉정과 열정 사이 Blu
국내도서
저자 : 츠지 히토나리(Hitonari Tsuji) / 양억관역
출판 : 소담 2015.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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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오이 편의 이야기를 다 읽고 쥰세이의 이야기를 읽기까지 책 한 권의 공백이 있었다.

아오이의 이야기를 빠른 시간 내에 다 읽었던 것에 비하면 쥰세이의 이야기는 여러 번에 걸쳐서 읽었다.

일단 두 이야기를 비교하는 것에 초점을 두자면, 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오이보다 쥰세이의 입장이 그나마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내가 전 글에 썼던 것처럼, 지금 옆에 있는 사람에게 충실하지 못했다는 점, 미련이 남았음에도 새로운 연인을 만나면서 그들에게 상처를 줬다는 점은 아오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쥰세이는 아오이와 달리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이었다는 점에서 점수를 더 줬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아오이가 마빈을 사랑하지 않았던 것과 달리, 단순히 옆에 누군가 있어주기를 바랐던 것과는 달리, 쥰세이는 메미도 사랑했다. 다만 아오이를 더 사랑했을 뿐. 메미가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떠나갔고 쥰세이는 잡을 수 없었을 뿐, 먼 미래에 후회할 수 있음을 암시했다.

 내가 느낀 것은 이러했다.

 

 다행히 둘이 이루어지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결말에, 반전을 준 것이 쥰세이의 이야기다. 아오이는 쥰세이와 재회한 후 떠난다. 하지만 쥰세이는 거기서 끝내지 않았다.

 솔직히 이 부분에서는 좀 실망스러웠다. 나는 그들이 잘 되기를 바라지 않았으니까. 행복해도 되지만, 그들이 행복해지기를 바라긴 하지만 적어도 그 방식이 아오이와 쥰세이가 함께하는 것이기를 바라지는 않으니까.

 쥰세이는 아버지로부터 아오이를 보호할 수 있을까? 아오이는 예전보다 쥰세이에게 더 솔직해질 수 있을까?

글쎄,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건 너무 이상적이지 않은가.

 

 냉정과 열정을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나는 쥰세이를 열정, 아오이를 냉정으로 해석했다. 저번에 아오이 버젼을 읽고 나서 내 얘기를 들은 사람은 그들의 과거가 열정이고 현재가 냉정인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람은 항상 냉정적일 수도, 열정적일 수도 없다. 정말 그렇게 극단적인 사람은 드물 것이다. 때로는 냉정적이고 때로는 열정적인, 이성과 감성이 섞인 게 사람이다. 그 비율의 차이는 있겠지만.

 

 운명을 믿고, 첫사랑을 지지하던 어린 때라면 정말 공감했을 지도 모르는 이야기다. 슬프게도 더 이상 운명을 믿지도 않고, 과거보다는 현재의 연인에게 더 충실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지금으로서는 눈살을 찌푸릴 수 밖에 없다.

 아름답게 묘사된 그들의 재회가 나에게는 이기적인 선택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냥 돌아돌아 만난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만나게 되었으니까.

 

 

 

 

 잊을 수 없는 여자가 있다고 해서 지금이 불행하다는 것은 아니다.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은 것도 아니다. 매일매일 이 거리의 푸르고 투명한 하늘처럼 상쾌한 기분을 만끽하며 살아가고 있다. 물론 아오이와의 사랑을 회복하고 싶지도 않다. 아오이와는 영원히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예감도 들고, 실제로 만난다 해도 아무 소용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건 분명 기억의 심술이다. 여기가 미침 시간이 정지해 버린 거리여서 그런지, 나는 어딘지 모르게 과거에 흔들리는 나 자신을 즐기는 것 같기도 하다.

 

 즐긴다고?

 

 아오이는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 그녀는 그런 여자이고, 나 역시 그런 걸 기대할 사내도 아니다. 누구에게나 헤어지지 않으면 안 될 그런 때가 있는 법이다.

 예를 들면 사별 같은 것…….

 아오이와 나는 과거에 그런 이별을 했다. 나는 이미 그녀가 죽어버렸다고 믿으려 했다.

(p. 12~13 中)

  처음에 쥰세이가 아오이보다 낫다라고 생각했던 건 이 부분 때문이었다. 더 이상 과거가 아무 소용 없음을, 현재에 충실할 것을 말했던 장면이다. 아오이 없이도 잘 지낼 수 있다고.

 그런데 그는 결국 지금이 불행하지 않다라고 말했을 뿐, 행복하다고 말한 적이 없다. 만날 수 없다, 소용없다, 이런 말들은 모두 스스로에게 거는 암시였다. 사실은 흔들리는 게 두려웠던 거지.

 

 더 이상 상대를 옭아매는 연애 따위는 하고 싶지 않다.

 과연 나는 기억을 지울 수 있을까.

(p. 15 中)

  이건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랄까. 상대를 옭아매는 연애. 내가 하던 연애가 사실 이런 것이었다. 평소의 나는 오히려 아오이에 가까웠다. 냉정하고 이성적이다. 하지만 사랑에 빠지면 쥰세이가 되었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집착하고 옭아맨다. 처음에는 상대가 숨을 쉴 수 있을 정도로, 애교로 봐줄 수 있는 정도로.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서운한 게 쌓여 이것이 폭발하고 만다. 그렇게 싸운다. 내가 일방적으로 화를 낸다.

 지금은 내가 아무에게도 엮이고 싶어하지 않는다. 지금의 자유가 좋고, 아무도 나를 바꾸려 하지 않는 게 좋다. 누구에게 맞출 필요가 없다. 그만큼 나도 상대를 있는 그대로 놔둬야한다는 것을 안다. 그것을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런데 정말 괜찮을까. 아직은 사랑에 빠지지 않았으니까 괜찮은 것 아닐까? 결국 사랑에 빠지면 나는 예전처럼 상대를 옭아매려 하지는 않을까? 정답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일단 부딪혀 보는 걸로.

 

 나는 그녀와 파국을 맞이하면서 유채화 복원의 길로 점점 기울어져 갔다. 절대로 그림에 소질이 없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실제로 지금도 그림을 그리고 있고 앞으로도 그릴 것이다. 그림을 못 그려서 복원사의 길로 들어선 것은 아니다.

 복원 일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잃어버린 시간을 돌이키는 세계에서 유일한 직업이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생명을 되살리는 작업…….

(p. 21 中)

 

 나는 이 거리에서 나 자신을 재생시킬 수 있을까. 내 안에 르네상스를 일으킬 수 있을까.

(p. 23 中)

 

 여기에는 2가지 의미가 있다. 잃어버린 시간을 돌이킨다는 것은 아오이와의 과거, '잃어버린 생명'은 그들이 없앴던 한 생명. 쥰세이는 피렌체에서 고미술품의 복원 작업을 하고 있었다. 시간이 멈춰 버린 바로 그 거리에서.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 또한 나의 예전 모습과 비슷하다. 그래서 더 정이 갔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말이지, 그 과거를 붙잡고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느끼면, 그 과거를 부정하거나 잊어버리게 되는 경우도 있다. 사실대로 떠올리면 지금 나는 버틸 수가 없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 나는 그것을 잊어야 한다. 그것은 과거이고, 더 이상 현재가 될 수 없는 게 현실이니까.

 나를 재생시킨다는 것은, 나에겐 과거를 잊는 것이었다. 과거와 별개로 현재를 살아가는 것. 내가 가야 할 목표를 향해서, 현재의 사람들과 함께. 그렇지 않으면 일어날 수가 없었다. 파괴된 채로 존재해야 했다. 그런데 누구나 다 어느 정도 그렇지 않은가.

 

 "미래는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아 늘 우리를 초조하게 해. 그렇지만 초조해하면 안 돼. 미래는 보이지 않지만, 과거와 달리 반드시 찾아오는 거니까."

 

 "… 이 곳은 과거로 역행하는 거리야. 누구든 과거를 살아가고 있어. … 그렇지만 이 곳은 중세 시대부터 시간이 멈춰 버린 거리야. 역사를 지키기 위해 미래를 희생한 거리."

(p. 50 中)

과거를 지키기 위해 미래를 희생한다.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서는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나의 선택도 이런 것이었다. 현재의 내가 버티기 위해, 미래에 행복하기 위해 과거를 버려야 했다. 변해야 했다. 발전해야 했다. 달라져야 했다. 과거와 같다면 그것은 나에게 과거를 떠올리고 되풀이하게 만드니까.

 

 아오이는 내 앞에서 '사랑'이라는 뉘앙스의 말을 사용해 본 적이 없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아오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불안해졌다. 그래서 따지듯이 물었다.

 "날 사랑하지 않니?"

 아오이는 시선을 피하며, 그렇지 않아, 하고 말했다.

 "그렇지 않아, 라는 일본어를 어떻게 해석하면 돼?"

 아오이는 당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사랑이라는 말을 소중히 여기는 양심적인 태도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정반대로도 해석할 수 있었다. 그녀의 입에서, 사랑, 이라는 말을 확실히 듣고 싶었다.

(p. 62 中)

 아오이가 잘못했다고 생각했던 부분이다.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은 게 잘못이라는 말이 아니다. 왜 말하지 않는지를 설명하지 않은 것이 잘못되었다.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은 걸 이해 못해주는 게 아니다. 나도 그런 사람이니까. 항상 사랑을 느낄 수는 없다. 그것이 가슴에 벅차올라서 눈물이 날 정도인 순간, 그럴 때 말하고 싶다. 함부로 남발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쉬운 말처럼 여겨지고 싶지 않다. 그래서 하지 않는다. 아오이도 이런 이유인지, 아니면 단순히 수줍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유를 말해야 했다. 연인 간에 사랑한다는 말을 요구할 권리 정도는 있지 않은가. 그토록 운명의 상대라고 구구절절 말해놓고는 이런 이유조차 제대로 얘기하지 못하는 사이라고? 자신을 솔직하게 보여줄 수 없는 상대에 불과한 것 같은데. 쥰세이가 설마 그 정도도 이해해주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게 아닌 이상.

 

 떠나지 않겠노라던

 당신은 지금 여기 없네

 영원히, 이를 수 없는

 언제나, 지나쳐 버리는

 여기에, 나는

 살아가고 있네

(p.106 中)

 지키지 못할 약속, 흘려보내듯이 했던 약속, 기억 못하는 거 아니다. 이런 거 함부로 말하지 말자. 결국 혼자가 된 후의 상처는 혼자서 짊어지게 되니까.

 

 

17.09.24 본인 작성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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