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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 리뷰] Cafe, 한 사람을 기다리다

by 미뉴르 2024. 10. 22.

https://www.youtube.com/watch?feature=shared&v=-6Uky2RRvMk

(카페, 한 사람을 기다리다 메인 예고편)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만 작품을 즐겨 보는 사람들이라면 익숙한 배우 송운화와 니유념대학마라는 대만 드라마를 통해 인기를 끌게 된 화호진(영어이름 브루스)가 주연인 영화다.

 

송운화 주연의 <나의 소녀시대>를 재밌게 보고 대만 영화에 푹 빠져 <안녕, 나의 소녀>까지 봤던 내게는 송운화가 주연이라는 게 꽤 반가웠다.

남자 배우는 처음 봤는데 보는 내내 웃을때 깊게 패이는 보조개가 아주 매력적이었다.

영화를 보고 남자 배우의 이미지들을 더 검색해봤는데, 웃지 않을 때는 꽤나 남성적인 매력이 있고, 웃을 때는 얼굴이 확 귀여워지는 매력 넘치는 인상이었다.

 

영화를 선택한 건 배우와는 관계가 없다.

<Cafe, 한 사람을 기다리다> 는 구바도(구파도)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인데,

내가 이 영화를 보게 된 것도 바로 그 소설 때문이다.

2007년, 블로그를 운영하기 시작하고 독서를 열심히 하던 그 즈음, 나는 <Cafe, 한 사람을 기다리다>라는 소설을 접했다. 

헤이즐넛이 생각나는 진초록의 표지를 가진 책이었다. 지금은 국내에서 구하기는 힘든 것 같다.

너무 오래 전이라 내용은 거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제목처럼 카페가 배경이었고, 그 카페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는 것만 어렴풋하게 기억이 난다.

내용도 제대로 기억 못하는 소설이지만, 주인공의 이름은 물론이고 책 제목도 가물가물한 나에게 이 책이 기억되고 있는 것은 내가 이 소설을 모티브로 책갈피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도 쓰고 있는 무려 15년 이상의 나이를 가진 책갈피다.

책갈피 앞면
책갈피 뒷면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는 학교 도서부였다. 도서부 활동으로 본인이 읽은 책을 모티브로 책갈피 만들기를 했었다.

직접 그림을 그려 꾸미고, 책에서 감명깊었던 구절을 적어서 책갈피를 만들었다.

내가 아마 이 소설을 골랐던 것은 그 당시에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이었을 거고, 갈색을 좋아하는 내가 갈색과 가장 어울리는 색으로 꾸미기에 커피가 적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거다.

그래서 좋아하는 갈색을 배경으로, 부족한 그림 솜씨로, 정성들여 커피를 그리고, 책에서 와닿았던 구절을 적었다.

그런데 위에 적힌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그 구절이란 게 그렇게 긍정적이고 밝은 구절이 아니다.

 

세상엔 처음부터 안 되는 것으로 정해진 일이 있는데, 그럼에도 미련하게 기다리겠다는 저 내용은 설명 없이는 대체 왜? 라는 의문부터 들 것 같다.

저게 어떤 교훈을 줘서 감명이 깊었던 것이 아니었다.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는 나이였고, 그렇게 마주하는 절망 속에서도 결국 노력이란 걸 계속 할 수밖에 없는 내 모습과 닮아 있었다.

참 미련하지만, 그게 결국 그때의 나였던 거다.

지금은 또 얼마나 나아졌냐 하면,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끝을 알면서도 그것을 부정하고 외면할 수 밖에 없는 그런 바보같은 모습.

아무튼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만들어주셨던 책갈피들에 비해 코팅도 짱짱하게 잘 되었고, 내가 직접 만들었다는 애착으로 아주 요긴하게 쓰고 있는 책갈피다.

 

기억나지 않는 소설로 만든 책갈피를 쓰면서 <카페, 한 사람을 기다리다>가 영화로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흥행하지 못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는 영화이지만, 나는 이 영화가 궁금했다.

하지만 시간을 버리는 건 또 싫어서 평점을 찾아보았는데 평이 생각보다 괜찮았다.

 

그렇게 보게 된 영화는 내 기대 이상이었다.

얼마 전에 <상견니> 드라마와 영화도 봤었고, 이번에 이 영화까지 보고 느낀 것은, 나는 대만의 로맨스 감성을 꽤나 좋아하는 것 같다.

유명한 대만 로맨스 영화인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는 사실 처음 봤을 때 내 감성에 그렇게 와닿지는 않았고, 그 이후로 다시 본 적도 없지만 그 이후에 본 대만 영화들이 강하게 와닿았다.

아마 '그소녀'를 내가 처음 봤을 때는 내가 학생이었기 때문이고, 그 이후의 영화들은 전부 성인이 된 이후에 봤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학창시절의 풋풋한 사랑의 감성을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더 소중하게 느낄 수 있게 된 게 아닐까.

 

그리고 또 하나 느낀 건, 나는 잘 만들어진 A급 같은 B급 연출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게 <킹스맨>이었는데, 황당하고 생뚱맞은 연출임에도 영화에 잘 녹여낸 장면들이 오히려 영화에 감탄하게 만들었었다.

그리고 <카페, 한 사람을 기다리다>도 천사의 존재, 구운 소세지, 순두부, 이상한 내가, 양아치와의 싸움까지 전부 엉뚱함과 비현실적인 것 투성이였지만, 그 어떤 것도 영화를 보는데 방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게 오랜만에 글을 작성하게 만든 이유였다.

 

찾아보니 영화는 소설에서 각색이 꽤 많이 되었는데, 소설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 관계로 영화 얘기만 적어야 할 것 같다.

 

영화의 시작은 리쓰잉이 입학한 대학의 괴담으로 시작한다.

남자화장실에서 사람의 것이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말똥'이 줄곧 출현한다는 괴담부터, 비키니를 입고 등교하는 남학생, 배추를 반려동물처럼 매일 끌어안고 다니는 학생을 이야기하는데, 같이 듣던 동아리원 중 한 명이 자기도 봤다고 말한다. 

단순한 괴담이 아니었던 것이다!

놀랍게도 비키니와 배추를 들고 다니는 학생은 '아토우'라고 하는 동일인물이었다.

그리고 그에 대해 한 가지 언급이 추가되는데, 사귀던 여자친구를 레즈비언에게 뺏겼다는 이야기였다.

비키니를 입고 다니는 성인 남자라니, 생각만 해도 정말 더럽다고 여겨지는데 아마 리쓰잉도 비슷한 기분이었을 거다.

리쓰잉은 소설 동아리에 가입했고, 동아리에서 구석에 쌓여있는 노트를 버리라고 시킨다.

리쓰잉은 노트가 들어있는 상자를 들고가다가 그만 상자가 뜯어져 노트가 바닥에 쏟기는데, 쏟기면서 펼쳐진 한 노트가 리쓰잉의 눈을 끌었다. 커피가 많이 그려진 노트였다.

그 노트를 읽으면서 길을 가던 리쓰잉은 버스에 치일 뻔하는데, 다행히 버스가 눈앞에서 멈추고, 넘어진 리쓰잉에게 어떤 남자가 손을 내밀어 일으켜 세워준다.

잘생기고 후광이 있는 그 남자에게 첫눈에 반한 리쓰잉은 남자를 따라 한 카페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곳이 바로 '한 사람을 기다리다'라는 이름을 가진 카페였다.

 

그 카페에는 아부쓰(알버스)가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는데, 어떤 커피를 주문하든 만들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아 엉뚱한 주문을 하는 손님들이 계속 오고 있다.

'상남자 커피'를 주문한 남자에게 "이건 상남자만이 마실 수 있지."라고 하며 바퀴벌레를 몰래 넣은 커피를 건넨 장면이 인상 깊었다.

남자를 따라 온 리쓰잉이 카운터에서 말을 더듬거리고 있자, 아부쓰는 리쓰잉을 카페 알바 면접을 보러 온 사람으로 오해하고 온갖 질문을 던진다.

제대로 답하지 못하고 있던 그때, 한 무리의 남학생이 들어오는데, 딱 봐도 한눈에 그 소문의 '아토우'라는 걸 알 수 있는 비키니 차림에 배추를 한쪽 팔에 낀, 롤러브레이드를 탄 남자가 그 중심에 있었다.

내가 여기서 놀랐던 건 보기 역할 거라고 생각했던 아토우의 비키니 차림이, 배우의 소년같은 얼굴, 선한 웃음과 매칭되면서 생각보다 그렇게 더럽지는 않았다는 거다.

아토우는 커피 주문을 하려다가 카운터에 있는 아부쓰를 보고 당황하는데, 같이 온 친구들은 모두 아토우의 여자친구를 뺏어간 레즈비언이 그 여자일 것이라 짐작하고 아토우를 대놓고 놀리기 시작한다.

이에 화가 난 리쓰잉은 친구인데 어떻게 그런 아픔을 가지고 놀릴 수 있냐며 화를 내고, 이 과정을 지켜보고 있던 카페 사장은 리쓰잉을 알바로 채용한다.

얼떨결이지만 리쓰잉은 카페에서 일하면 단골처럼 드나드는 그 잘생긴 남자를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카페에서 일하기로 한다.

 

그 잘생긴 남자는 학교에 다니는 학생인지 학교 도서관에서도 보이고, 길에서도 보이는데, 그가 있는 곳마다 아토우도 리쓰잉과 우연처럼 자꾸 마주친다.

아토우는 자기를 위해 말해 준 리쓰잉에게 고맙다며 영화를 보자고 제안하고, 어찌저찌 리쓰잉은 아토우와 함께 영화를 보고, 아토우가 일하는 곳에 가면서 아토우와 친해져가기 시작한다.

 

아토우의 비키니 차림은 거의 초반에만 볼 수 있는데, 이 비키니와 양배추, 롤러브레이드에는 사연이 있다.

철두공 동아리의 회장이었던 아토우가 다른 동아리(오줌 오래싸기 동아리 등)의 회장들과 대결의 내기 조건으로 걸었던 것이 1년동안 비키니 입고 학교 다니기, 7년간 학교 다니기 등이었다.

순수한 청년인 아토우는 그 내기들에서 졌고, 저런 흉한 모습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그의 주변에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서 그의 인간 됨됨이가 보였다.

그리고 아마 리쓰잉도 그것을 알아보았던 것 같다.

아토우와 서로 비밀을 나누고 친해져갔다.

 

아토우는 아프리카 여행을 위해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벌고 있었는데, 하루는 길거리에서 물건을 팔고 있었다.

그런데 양아치들이 학교 과제니 기부니 어쩌니 거짓말을 해가며 길거리 시민에게 펜을 비싸게 팔고 있었다.

지나가는 리쓰잉은 그것을 보고 양아치들에게 화를 냈고, 철두공을 열심히 연습하는 친구 덕에 양아치들을 쫓아냈다.

아토우는 그런 정의롭고 당당한 리쓰잉의 모습에 반하게 된다.

 

아토우가 어릴 적 동네에 구운 소세지를 팔던 아저씨가 돌아가시게 되었는데, 구운 소세지를 더 이상 먹을 수 없게 된 아토우가 슬퍼서 울고 있었다.

그때 죽은 아저씨가 천사처럼 나타나서, 아토우가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의 머리 뒤에서 구운 소세지가 나타나게 해주겠다고 했다.

그때 순두부 파는 사람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아토우가 순두부도 먹고 싶다고 하자, 아토우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여자가 생기면 그 여자의 머리에서는 순두부가 나오도록 해주겠다고 했다.

그 말처럼 아토우가 리쓰잉에 대한 사랑을 자각하자, 리쓰잉 머리 뒤에서 김이 올랐고, 구운 소세지가 나타났다.

리쓰잉은 신기해하며 아토우에게 어떻게 한 것인지를 물었고, 아토우는 바로 그 옛날 얘기를 하며 고백을 했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던 리쓰잉은 그저 마술 정도로 여기며 넘긴다.

 

이후 바오 형님과 세탁소 아주머니, 그리고 카페 사장과 리쓰잉이 좋아했던 그 남자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리쓰잉은 뒤늦게 자신이 사랑하는 게 아토우라는 걸 깨닫는다.

비행기를 타러 간 아토우를 잡으러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던 리쓰잉의 머리 위에 뜨끈한 순두부가 담긴 그릇이 생긴다.

 

그렇게 아토우는 떠났고, 1년 뒤에 돌아온 아토우는 처음 봤을 때처럼 손에 배추가 아닌 괴상한 물건을 들고 나타난다.

또 이상한 내기에서 졌나 보다.

 

 

뻔한 사랑 이야기를 뻔하지 않게 만든 것은, 그 연출이 뻔하지 않았다는 거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총이나 칼을 맞아도 죽지 않았고,

남주가 아닌 다른 남자를 좋아한 여주는 그 남자에게 고백도 한다.

남주를 잡으러 가던 여주는 오토바이 기름이 다 떨어져 공항은 커녕 길거리에서 멈춘다.

단순히 멋있고 예쁜 모습만 연출되는 것이 아닌, 재채기를 하면서 콧물이 잔뜩 나오고 침이 튀기도 하고, 비키니를 입한 흉한 모습도 보인다.

 

누군가는 너무 쉽게 죽어버리긴 했지만, 또 쉽게 죽지 않는 이야기였고

여주의 마음이 쉽게 변하지 않았다는 것도 좋았고

떠나는 아토우를 잡을듯 말듯 잡으면서 이루어지는 결말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는 한심한 그 모습이, 누군가에게는 약속을 잘 지키는 멋진 사람으로 기억된다.

 

 

많은 영화가 뻔하다.

액션 영화는 나쁜 악당과 싸워 결국 영웅이 승리하고 그 과정의 싸움과 고난들이 있고 조력자가 있다.

로맨스 영화는 남녀 두 주인공이 사랑의 결실을 맺는데 그 과정에서 마음이 생기는 계기가 있고 타이밍이 엇갈린다.

이 영화가 특별한 것은, 뻔한 이야기의 뻔한 과정에서 뻔하지 않은 소재들이 등장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뻔한 과정도 조금씩은 틀어졌다.

신선함과 엉뚱함이 주는 재미가 아니었을까.

 

 

우리들은 모두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남들은 모르는 나의 반짝거리는 모습을 알아봐 줄 단 한 사람을.

나의 반짝거리는 모습은 어떤 모습이며, 그 사람을 나는 만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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