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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소설집] 저자: 김애란,김연수,윤성희,은희경,편혜영 출판: 프란츠 발행: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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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복지 제휴로 e-북이 제공되는 것을 알고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제공되는 e-북은 모두 최신작이고 유명한 베스트셀러들 몇 권뿐이다.
그 중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읽었으나, 책에서 전달하는 내용 이상의 무언가를 쓰고 싶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e-북이 읽기에는 눈이 불편하고, 분량을 알 수가 없어서 페이지 수가 적은 것을 먼저 읽으려고 하는데,
그렇게 읽게 된 <음악소설집>의 첫번째 에피소드에 대해 적어보려고 한다.
<음악소설집>은 다섯 작가의 단편소설을 엮어 만든 책이다.
그리고 첫 번째 에피소드인 <안녕이라 그랬어>는 김애란 작가가 쓴 부분이다.
김애란 작가는 내가 한창 독서모임을 하던 2017년에 처음 접했다.
작가의 이름을 잘 기억하지 않는 나로서는 아직까지 이 이름을 기억하는 건 이례적인데, 당시 독서모임에 동명의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이 내게 좀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내가 이전에 김애란 작가의 작품을 읽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안녕이라 그랬어>만 두고 얘기하자면, 굉장히 여운이 남는 작품이었다.
뭐라고 말로 표현하기는 힘든데, 그 감정에 젖어드는 시간이 찾아왔다.
어릴 때는 성격검사만 하면 감수성이 풍부하다는 말이 가장 많이 나오던 내가,
어느 새 그 감수성도 감성도, 감정도, 표정도 사라져버린 내가,
오랜만에 감성에 젖는 시간을 선사해준 글이었다고 하겠다.
<안녕이라 그랬어>에는 여러 인물들이 오고 간다.
주인공을 중심으로 스쳐지나간 여러 강사들, 깊은 인연이었던 헌수, 가장 큰 존재였을 엄마, 그리고 방황의 끝에 잠시 닿은 인연 로버트.
주인공인 은미는 두 차례 큰 이별을 맞이한다.
엄마와의 이별을 맞이하는 과정에서 5년간의 길고 긴 간병이 있었고,
그 과정 속에서 2년 연애, 4년 동거한 헌수와 헤어지게 된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공교롭게도 은미가 크게 다치면서 또 2년을 아무것도 못한 채 어머니의 보험금으로 생활하고,
그렇게 7년간의 공백이 생기는 40대 중반의 경력단절 여성이 되어 버렸다.
무엇을 해야할지 몰랐던 그녀는 뭐라도 하자는 생각으로, 그리고 자신의 동네를 떠나자는 생각으로 화상으로 영어를 배우게 된다.
그렇게 만난 게 강사 로버트와, 그 앞의 몇몇의 강사들.
그 앞의 강사들은 여느 강사들이 그렇듯, 서서히 수업 텀이 길어지더니 수업을 중단해버린다.
이게 참 인간관계를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 대변해주는 것 같다.
32년이라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삶을 살아오면서 가장 상처가 되었던 건 사람들의 마음이 나만큼 진심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모두가 나만큼 진심이었다면 세상은 훨씬 더 살기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꽤 많이 하곤 한다.
내가 남들과 달리 유독 착한 심성의 소유자라는 걸 커오면서 알게 됐다.
남들이 보지 않는 공간, 남들은 볼 수 없는 생각조차 예쁘고 착하게 하던 내 모습에서 말이다.
그리고 그게 아무짝에도 쓰잘데기 없다는 것도. 오히려 그런 마음과 진심이 나의 상처를 깊게 만들었다.
그리고 어느 새 여느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도 타인에게 그만큼의 기대도 하지 않고, 내 마음도 그만큼 주지 않기로 했다.
몇몇의 강사를 거쳐 만나게 된 로버트.
로버트는 그 사이트(?)에서는 꽤 유명한 강사였는데, 은미가 그에게 관심을 가진 건 과거에 헌수와의 기억 때문이다.
'Love Hurts'라는 킴 딜과 로버트 폴러드의 노래를 헌수와 같이 들었던 추억 때문이다.
은미는 노래를 듣다가 이 외국 노래에서 "안녕"이라는 단어를 듣게 된다.
헌수에게 "안녕"을 들었다고 말했고, 사실 그 가사는 "I'm young."이었다.
이 노래를 부른 가수의 이름이 로버트였기에 관심강사에 로버트를 등록해놓았고 결국 돌고 돌아 동명이인 로버트의 수업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공교롭게 이 로버트가 수업 도중 은미에게 한국말로 "안녕"이 무엇인지 묻는다.
은미는 헌수와의 기억을 떠올리며 "안녕"이라고 말해주고, 여기에는 '만나서 반갑다'는 의미와 '잘 가'라는 의미가 모두 담겨있다고 말한다.
그러자 로버트는 그럼 그 두 의미는 어떻게 구분하냐고 묻자, 은미는 "그냥 알게 된다"라고 답했다.
이 '안녕'으로 얽힌 이야기는 '안녕'으로 끝이 난다.
로버트와 수업을 하던 어느 날, 은미는 로버트에게 오늘이 마지막 수업임을 말하고, 로버트와 수업 대신 얘기를 나누자고 제안한다.
그렇게 그동안 서로 하지 않았던 얘기, 혹은 서투른 영어 때문에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나눈다.
그리고 은미는 하나 더 덧붙인다.
"안녕"이라는 말에는 평안하게 지내라는 의미도 들어있다고.
그리고 은미는 로버트에게 "안녕"이라는 인사를 건넨다.
로버트가 이에 대답하려는 순간, 수업시간이 소진되어 화상연결이 끊어지게 된다.
로버트는 아마 이전에 은미가 "그냥 알게 된다"라고 했던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 알았으리라.
"안녕"이라는 말 외에도 헌수와 은미의 이야기도 조금 더 들여다보고 싶다.
헌수와 은미의 정확한 이별 사유는 나오지 않는다.
그저 헌수의 부모님은 모두 병으로 돌아가셨고, 그 과정에서 헌수는 병수발을 굉장히 오랜 시간 겪었다.
그리고 이제 은미에게 닥친 병수발 앞에서 은미는 헌수에게 그 과정을 함께 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는 뉘앙스,
그렇게 이들은 헤어지고, 헌수에게 연락이 와서 다시 만나고, 또 헤어지고 이런 과정을 반복한 것 같다.
이 둘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오래 사귄 연인이 있는 나에게 이 이별의 의미는 무엇인지, 이들은 왜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사실 아직도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부분이다.
헌수도 그녀를 붙잡고 싶었지만, 그 길고 고된 시간을 함께 다시 겪을 자신은 없었던 걸까.
은미는 정말 헌수를 밀어내고 싶었던 걸까. 사실은 그를 돌아볼 여유가 그녀에게 없어서 저절로 멀어지게 된 것은 아닐까.
그들의 상황이 달랐다면, 그들은 언제까지 함께했을까.
'하나 마나 한 말'을 최대한 진심 어리게 하는 것도 어른의 화법일 텐데, 누군가의 부고와 마주할 때마다 스스로가 가진 표현의 한계와 상투성에 어쩔 줄 몰라했다. 상투성이 뭐 어때서. 세상에 삶만큼 죽음만큼 상투적인 게 또 어디 있다고. 그 '반복'의 무게에 머리 숙이는 게 결국 예의 아니던가.
(음악소설집 中)
이 부분을 읽을 때 뭔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누군가의 부고에, 혹은 안 좋은 소식들에 어떤 말로 안타까움을 전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결국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외에는 그 어떤 말도 적을 수 없는 나를 발견하고는 했다.
30분을 고민하고 쓰는 말은 겨우 그 흔하디 흔한 그 한마디. 앞뒤에 수많은 부연의 말이 적혔다가 지워진 채 결국 저 말만 보내고는 한다. 저 말만큼 진심어린 말도 없고, 그 앞뒤에 붙이는 말들이 오히려 내 진심을 가벼워보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걸 표현해준 부분이 바로 이 내용이었다.
가장 뻔한 말을 내뱉는 게 결국 어른이구나, 가장 고심한 결과가 가장 뻔한 말이구나.
결국 뻔한 얘기를 하게 되는 건 그게 가장 적절한 말이기 때문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큰 아픔은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얘기도 가장 뻔한 말이지만, 가장 정답이기도 하다.
사실은 살아가다 보면 반복적으로 겪게 되는 그것이, 처음 겪을 때는 너무나 힘들지만, 결국 상투적인 말과 함께 상투적인 것으로 변해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Love Hurts 듣기)
https://youtu.be/Icva5yTTlAQ?feature=sha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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