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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by 미뉴르 2019. 12. 7.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국내도서
저자 : 히가시노 게이고 / 양윤옥역
출판 : 현대문학 2012.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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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본격적인 기말고사가 시작되기 전에 다 읽었던 책인데, 이제야 쓰게 되었다.

읽게 된 계기는 현재 내가 하고 있는 봉사활동.

독서모임에서도 어쩌다보니 여러 번 얘기했는데, 익명의 고민편지에 답장을 써주는, 나미야 잡화점과 유사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그래서 꼭 한 번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다.

어떤 고민들이 담겨 있는지, 그 고민들에 어떤 답장을 해주는지, 그리고 그 답장을 받은 사람들은 어떤 기분인지.

내가 편지를 써주면서 가장 궁금해하던 것이 아닐까 싶다. 나의 답장을 받은 사람은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을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을까. 이걸 다른 사람이 아니라 '하필' 내가 써주는 것이 맞을까. 내가 가장 잘 써줄 수 있는 사람이 맞는 걸까.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건, 이런 걱정들은 그만두고 그냥 진심을 담아서 쓰면 그걸로 되지 않을까였다.

책에서는 굉장히 깊게 생각하고 밤새도록 고민해서 답장을 써주던 나미야 할아버지와, 얼떨결에 편지 답장을 써주게 된 도둑 무리가 대비된다. 하지만 두 편지 모두 궁극적으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 얼떨결에 심한 말로 답장을 썼지만 그래도 그 마음은 역시 편지를 받는 사람을 걱정하는 마음이 시작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고민편지를 보낸 사람들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기에, 그저 털어놓을 곳이 필요했기 때문이겠지. 내가 가장 믿는 것 중 하나.

 '사람들은 이미 정답을 알고 있거나, 알아가는 과정에서 생각의 정리가 필요할 뿐이다. 그저 그 정답을 확인받고 싶거나 그래도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은 것뿐. 아니면 너무 답답해서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을 뿐.'

 실제로 진지한 조언을 구하는 사람은 종종 있지만 그렇게 많지 않다. 우리가 해주는 일은 공감과 위로, 약간의 발상의 전환에 도움을 주는 정도. 내가 결국 마지막에는 내가 모르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힘든 그들의 마음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함께 눈물 흘리며 써준 그 마음이 전달되었으면, 그래서 그 사람들이 따뜻해졌으면 좋겠다.

 

 "너한테 하라는 게 아니야. 여기 이 토끼 씨한테 하라는 거지."

 "아니, 난 내가 못하는 걸 남한테 하라고는 못해. 쇼타, 너라면 어떨 거 같아? 할 수 있겠어?"

 고헤이의 질문에 쇼타는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p. 28 中)

 

 초반부에 도둑들이 폐허가 된 나미야 잡화점에서 편지를 받고 고민에 답장을 써주기 위해 의논하던 장면이다. 비록 도둑들이었고 엉겁결에 써주게 된 것이지만, 남에게 자기가 못하는 걸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 이게 상대방을 배려해주는 마음 아닐까. 내가 이 장면을 읽고 먼저 떠올린 경험은 조금 다른 경험이긴 했다. 예전에 동아리에서 신입회원을 모집할 때, 면접 질문을 정할 때의 일이다. 선배가 제시한 질문에 나는 "그런 질문을 하면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나도 이 동아리를 가입할 당시만 해도 이런 건 전혀 몰랐었다"라고 말했는데, 선배는 "그건 네 사정이고."라고 답을 했더랬지. 정말 사람을 거르기 위한 면접이었다면 그런 질문도 상관없었을 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웬만하면 다 받을 생각이었고, 나는 면접조차 보지 않고 들어온 사람이기에, 그런 질문에 대답을 제대로 못한다고 해서 동아리 가입을 거부하는 건 부당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이 부분에서 고헤이의 말에 더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내가 못하는 걸 남에게 해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못하더라도 이해해줄 수 있는 건, 역시 그것을 못하는 나뿐이지 않을까. 나라도 이해해줘야하는 거 아닌가.

 

"당신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항상 곁에 함께 있고 싶어. 내가 훈련을 그만둬서 당신의 건강이 회복될 수만 있다면 망설임 없이 그렇게 할 거야. 하지만 상황이 그렇지 않다면 내 꿈을 버리고 싶지는 않아. 지금까지 꿈을 향해 열심히 달려왔기 때문에 나는 나답게 살 수 있었고, 그런 나를 당신이 좋아했던 거니까. 당신을 단 한시도 잊어버린 적은 없어. 하지만 부디 내 꿈을 향해 달려가게 해줘."

 그러자 병상에서 그 사람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말을 기다렸다, 네가 나 때문에 고민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너무 괴로웠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 때문에 꿈을 포기하는 것은 죽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다. 설령 우리 둘이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마음만은 항상 함께 있다, 아무 걱정 말고 네 꿈을 향해 후회 없이 뛰어보라고, 그는 말해주었습니다.

(p. 79 中)

 토끼 씨로부터 온, 그 이후의 있었던 일들이 적힌 답장의 내용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해지기를, 꿈을 이루기를 바라는 마음. 옆에 있고 싶은 마음 이상으로 그 사람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진짜 사랑이라고 믿는 나로서는 정말 좋았던 부분이다. 토끼 씨가 바른 선택을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계속 간병을 했다고 해서 잘못된 선택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 남자가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었으니까. 사랑에서 '자기 자신'이 없어지는 건 좋지 못한 사랑이라고들 한다. 아무리 상대방을 사랑해도 결국 자기 자신이 1순위여야 한다고. 그녀의 꿈이 이뤄진 건 아니었지만, 미련과 후회는 남기지 않을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그 모습을 본 그 남자도, 행복했을 것이다. 그녀가 꿈을 향해 노력하는 모습이 그에겐 가장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이었을 테니까.

 

 "해코지가 됐든 못된 장난질이 됐든 나미야 잡화점에 이런 편지를 보낸 사람들도 다른 상담자들과 근본적으로는 똑같아. 마음 한구석에 구멍이 휑하니 뚫렸고 거기서 중요한 뭔가가 쏟아져 나온 거야. 증거를 대볼까? 그런 편지를 보낸 사람들도 반드시 답장을 받으러 찾아와. 우유 상자 안을 들여다보러 온단 말이야. 자신이 보낸 편지에 나미야 영감이 어떤 답장을 해줄지 너무 궁금한 거야. 생각 좀 해봐라. 설령 엉터리 같은 내용이라도 서른 통이나 이 궁리 저 궁리해가며 편지를 써 보낼 때는 얼마나 힘이 들었겠니"

(p. 158 中)

 하룻밤 만에 30통이 넘는 장난처럼 보이는 편지들이 왔을 때, 나미야 할아버지가 한 말이다. 우리도 가끔 이런 편지를 받는다. 그저 답장이 오는 지 확인해보기 위해 쓰는 편지들. 그런 편지들에도 답장을 받을 주소는 적혀 있다. 오히려 진지하지만 그저 털어놓을 곳이 필요했던 사람들은 받을 주소를 쓰지 않아서 우리가 써줄 수 없는 경우는 있다. 어른뿐만 아니라 어린 아이들에게서도 편지가 온다. 그들의 그 작은 고민조차도 우리는 정성스레 답을 써준다. 그 장난처럼 보이는 편지에, 정성스럽게 답을 써주며 혹시 고민이 있거든 나중에 다시 편지를 보내달라고 그렇게 답장을 했었다. 우리의 정성이 그들에게 닿기를, 우리의 온기가 그들에게 닿기를 바라며.

 

 "내가 몇 년째 상담 글을 읽으면서 깨달은 게 있어. 대부분의 경우, 상담자는 이미 답을 알아. 다만 상담을 통해 그 답이 옳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거야. 그래서 상담자 중에는 답장을 받은 뒤에 다시 편지를 보내는 사람이 많아. 답장 내용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이지."

(p. 167 中)

 이미 앞서 말했던 내 생각과 동일한 부분이다. 다만 우리의 차이점은, 답을 함부로 제시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생각과 다르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인지, 답장을 받고 다시 편지를 보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궁리 끝에 고스케는 대답했다. 1957년 6월 29일생.

 6월 29일. 비틀스가 일본을 방문한 날이었다.

(p. 288 中)

 나에게 특별한 날짜.

 

 하루미는 조용히 고개를 저으며 감탄의 한숨을 내쉬었다. 두 사람이 맺어지지 못한 것은 안타깝지만 한 남자를 그토록 깊이 사랑할 수 있었다는 점은 부럽기도 했다.

(p. 404 中)

 나미야 잡화점에서의 기적이 설명될 수 있었던 부분에 있던 구절이다. 두 사람의 사랑이, 두 사람의 따뜻한 마음이 만들어 낸 기적. 그렇게 오랜 시간 서로를 그리워했던 이들의 사랑이 좋았다.

 

 이름 없는 분에게.

 어렵게 백지 편지를 보내신 이유를 내 나름대로 깊이 생각해보았습니다. 이건 어지간히 중대한 사안인 게 틀림없다, 어설피 섣부른 답장을 써서는 안 되겠다, 하고 생각한 참입니다.

 늙어 망령이 난 머리를 채찍질해가며 궁리에 궁리를 거듭한 결과, 이것도 지도(地圖)가 없다는 뜻이라고 내 나름대로 해석해봤습니다.

 나에게 상담을 하시는 분들을 길 잃은 아이로 비유한다면 대부분의 경우, 지도를 갖고 있는데 그걸 보려고 하지 않거나 혹은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알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마 당신은 그 둘 중 어느 쪽도 아닌 것 같군요. 당신의 지도는 아직 백지인 것입니다. 그래서 목적지를 정하려고 해도 길이 어디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일 것입니다. 지도가 백지라면 난감해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누구라도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하겠지요.

 하지만 보는 방식을 달리해봅시다. 백지이기 때문에 어떤 지도라도 그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당신 하기 나름인 것이지요.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가능성은 무한히 펼쳐져 있습니다. 이것은 멋진 일입니다. 부디 스스로를 믿고 인생을 여한 없이 훨훨 피워보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상담 편지에 답장을 쓰는 일은 이제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멋진 난문을 보내주신 점, 깊이 감사드립니다.

나미야 잡화점 드림

(p. 446~447 中)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었던 그때, 도둑들이 넣었던 백지는 과거의 나미야 할아버지에게 전달되었다. 그리고 그 백지에 대한 답장이다. 백지마저도 고심하고 고심해서 답장을 해주는 이 마음. 나는 과연 백지편지에 답장을 해줄 수 있을까? 절대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냥 장난으로 치부해버릴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야미 할아버지의 답장은, 도둑들의 인생을 바꿔놓을 수 있는 정도의 힘을 지녔다.

 

 끝으로 내가 가진 지도도 백지였다면,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고 생각해본다. 아직 길을 만들 무궁무진한 기회는 있는 지도이겠지만, 백지는 아니다.

 

 

18.01.03 본인 작성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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