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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도쿄 타워

by 미뉴르 2019. 12. 9.
도쿄타워
국내도서
저자 : 에쿠니 가오리(Kaori EKUNI) / 신유희역
출판 : 소담 2005.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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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제목의 책. 학창 시절부터 많이 들어봤다는 이유로 읽고 싶어했던 책이다. 당시 일본 소설 및 로맨스 소설에 꽤나 빠져있었으니까. 이 블로그에서도 과거 내 책 취향은 쉽게 알 수 있겠지만.

 

 사실 기대와는 달리 읽는 내내 불편했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은 전부 나와 맞지 않는 것일까? 저번에도 냉정과 열정 사이를 신랄하게 비판했었는데, 이번에도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유부녀와 만남을 가지는 두 남자 주인공들이 내 도덕적 기준을 벗어나기 때문이다. 그것이 순수하고 아니고를 떠나서 그 가족 당사자를 전혀 배려하지 못한 것이다. 물론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남편만 있고 아이는 없었지만, (있었던 경우 매우 후회하는 모습으로 나오지만) 아이가 없다고 해서 그래도 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아름답게 포장하고, 그런 것에 감탄하기에는 내가 너무 커버렸다. 그래서 너무너무 불편했다. 아름답게 쓰기 위해 노력한 것 같지만 결국은 갓 스무 살 된 남자 주인공들의 어리석고 비도덕적인 행동들에 불과했다. 자기가 하면 로맨스라는 그런 자기중심적인 발상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저자의 후기도 역자의 후기도 매우 불쾌했다. 이야기에 심취한 나머지 현실을 잊어버린 것만 같았다. 소설 속 불륜녀들에게 감정이입이라도 한 것일까? 내가 보기엔 그들도 굉장히 이기적이다. 현재 자신의 삶은 망치고 싶어하지 않는다. 자신의 가정을 지키고 남편의 신뢰를 지키려고 한다. 하지만 동시에 젊은 남성에게서도 사랑을 갈구한다. 결국 두 가지를 다 가지겠다는 욕심이 아닌가? 그것도 자신만을 위한 욕심 말이다. 남편이든 내연남이든 양쪽 모두에게 상처를 줘가면서 자기만 행복하겠다고. 자기만 원하는 모든 것을 누리겠다고.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으면서 얻기만을 바라는. 결말이 제발 그들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것이 아니기를, 뭔가 교훈을 주는 것이기를 바라며 읽었는데 너무 실망스러웠다. 어찌 보면 파멸에 이른 것이나 다름없는 코우지마저 아름답게 포장하며 끝내는 모습에 짜증이 났다.

 읽는 내내 이런 불편함들 때문에 집중해서 읽을 수가 없었고 그래서 굉장히 오랜 시간에 거쳐 읽었다.

 그냥 단순한 로맨스 소설이었으면 훨씬 좋았겠다. 평범한 남자와 여자였으면 좋았겠다. 유부녀와 미성년자가 아니라.

 

 사랑은 하는 것이 아니라, 빠져드는 거야.

(p. 54 中)

 참 좋은 말이었다. 이 말 자체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말한다고 해서 이들의 사랑이 아름다운 건 아니다. 처음에는 남편도 사랑했을 거잖아. 결국 그 사랑은 이제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사랑은 언제든 변할 수 있다고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이게 어떻게 아름다울 수 있겠어.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언젠가 시후미는 그런 말을 했다.

 "내세울 만큼 행복하다는 건 아니지만, 사실, 행복하고 안하고는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니까."

 라고,

(p. 70 中)

 남편도 내연남도 모두 가지고 있으니 참 행복했겠지.

 꼭 저런 식이 아니어도 행복할 수 있었을 텐데. 행복은 결국 마음 먹기에 달린 것인데. 적어도 시후미의 인생보다 내 인생이 더 마음에 든다. 스스로에게 그리고 사람들에게 떳떳하니까. 누군가에게 저런 식으로 상처를 주지는 않을 테니까.

 

 코우지가 연상의 여자를 좋아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토오루에게 말한 것처럼, 예를 들어 몸이라든지, 또래 여자 애들보다 돈이 많아서 편하다든지, 함께 다니면 폼이 난다든지, 장래에 대해 심각하게 캐묻지 않는다든지, 하는 것들이 아니라 좀 더 단순한 이유였다.

 연상의 여자는 천진난만하다.

(p. 75 中)

 글쎄, 정말 천진난만한 것일까, 천진난만한 척 하는 것일까. 나이 차를 극복하기 위해 너무 나이 들어 보이지 않기 위해 천진난만한 행동을 더 과장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던 건가. 뭐, 천진난만한 척도 천진난만한 것에 포함된다고 한다면 할 말 없지만. 천진난만함은 나이 때문이라기보다는 타고나는 것인데. 그리고 역시 어떤 상대를 만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인데.

 코우지는 2명의 여자와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 더 천진난만하다고 여겼던 건 오히려 더 어린 유리였다. 코우지의 또래인 유리. 내가 이 소설에서 유일하게 마음에 들어했던 캐릭터이다. 천진난만하고 순수했다. 동시에 연상의 유부녀였던 키미코는 천진난만한 것이 아니라 철이 없고 집착하고 애정결핍이 있는 그런 여자에 불과했다. 그래서 쉽게 예민해지고 감정적으로 대응했던 것이다. 그런 철없고 부족한 모습을 천진난만하다고 표현한 건가. 나에게 있어 천진난만함이란 순수하고 밝은 모습이다. 저렇게 울고 집착하는 모습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옳지 않다고 토오루는 생각한다. '손해'를 본 것은 시후미가 아니다. 십 년 전의 자신은 시후미에게 매력적이었을리 없겠지만, 십 년 전의 시후미는…….

 토오루는 그 이상 생각할 수가 없어 한숨을 쉰다. 서른 살의 시후미, 스무 살의 시후미, 열다섯 살의 시후미, 독신의, 그리고 소녀 적의.

(p. 90 中)

 이 내용이 담으려고 했던 의미에는 동의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내가 알지 못하고 함께 하지 못했던 과거의 모습. 사랑을 하면 어떤 모습이든 사랑스럽다. 그 사람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싶다. 현재와 미래는 내가 함께 한다 치더라도, 과거만큼은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그 과거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부럽다. 그래서 나는 가족들을 질투하고는 한다. 그래서 이 사람과 꼭 닮은 아들을 갖고 싶다고 생각을 하곤 했다. 아이를 통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과거를 보고 싶으니까.

 

 토오루는 신기한 마음으로 생각한다. 그 시절은 혼자라는 것을 당연한 일로 여겼다. 혼자여도 아무렇지 않았다. 이 얼마나 강인하고 둔감한 일인가.

(p. 154 中)

  굳이 동정을 한다면 동정을 할 캐릭터다, 토오루는. 어릴 때부터 혼자였고 그에게 시후미는 특별한 존재였다. 그녀에게 자신의 모든 사랑을 쏟아붓는다. 토오루가 좀 더 다른 사람들처럼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았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다.

 나도 혼자인 것이 너무나 당연했던 과거가 있기에 토오루의 마음은 안다. 혼자여도 아무렇지 않은 건 강인해서가 아니라, 함께여본 적이 없어서 외로움이 뭔지 모르기 때문이다. 외롭지 않아 본 적이 없어서.

 

 토오루가 유리와 단둘이 만나는 것에 대해, 코우지는, 자신이 조금도 불쾌해지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상당히 질투심이 강한 편이라고 평소에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경계심도 강한 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두 사람은 모두 자신의 경계심을 없애 주는 인간이다. 그런 생각에 코우지는 어쩐지 흡족한 기분이 들었다. 믿을 수 있는 인간은 적지만, 한 번 믿으면 끝까지 믿는다.

(p. 168 中)

  코우지의 과거를 느끼고 싶어하던 유리는 코우지의 절친이었던 토오루에게 코우지가 살던 동네에 데려가 달라고 말한다. 이 책에서 그나마 가장 좋아했던 장면이다. 코우지의 과거 모습을 들으면서 행복해하던 유리. 그렇게 코우지가 좋냐는 질문에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좋다고 대답하던 유리. 이게 바로 천진난만함 아닌가. 그토록 맹목적으로 순수하게 누군가를 사랑하는 모습이 예뻤다.

 처음 이 부분에서 코우지가 유리와 토오루를 그만큼 신뢰하고 믿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은 그저 코우지가 그 정도로 유리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유리의 이별 선언에 코우지는 유리를 붙잡지 않는다. 오히려 키미코와의 이별로 유리의 심정은 하나도 헤아리지 못하고 있었다. 끝까지 유리만큼은 상처 받지 않기를 바랐는데, 코우지가 나쁜 남자인지라 모두가 상처 받았다. 유리가 너무 안쓰러웠다. 코우지는 전혀 질투심이 강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질투가 없어 보일 정도. 정말 좋은 여자를 놓친 걸 평생 후회해야 할 텐데.

 

 고독해 보이고 싶은 십대랑은 다르니까. 난 이제 혼자이고 싶지 않아.

(p. 242 中)

 고독해 보이고 싶은 십대.

 혼자여도 괜찮은 이십대.

 혼자이고 싶지 않은 삼십대.

 

 이 부분을 읽고 생각한 내용이다.

 고독해 보이고 싶었다라, 어른처럼 보이고 싶었으니까, 성숙해보이고 싶었으니까, 그렇긴 했다.

 지금은 사실 내가 원한다면 사람들 속에 있을 수 있으니까, 혼자여도 괜찮다. 혼자서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고 이겨내는 법을 아니까.

 삼십대는 글쎄, 겪어보지 않았으니 모르겠다 라고 해야겠지.

 

 

 

 글을 쓰다보니 감정이 좀 격해졌다. 사실 이 책보다 더 불편하게 읽어서 아직도 리뷰를 쓰지 못하는 책이 또 있다. 또 일본 소설이다. 일본의 소설세계를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걸 단순히 개방적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 웬만하면 '그럴 수 있지'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는데,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고 피해를 줄 수밖에 없다면 그건 옳지 못하다.

 

 

 

18.01.10 본인 작성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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