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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 리뷰] 82년생 김지영

by 미뉴르 2019. 12. 19.

 

 

 

 

스포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원작은 읽지 않았는데 주변에서 다들 눈물 흘리며 본 영화라고 해서 보게 되었다.

그리고 50대가 30대보다 더 깊게 공감할 수 있다고 하여, 엄마와 함께 보러 가게 되었다.

휴지를 준비하지 않은 건 실수.. 엄청 많이 울지는 않았지만 콧물 때문에 힘들었다. 급한 대로 물티슈로 닦기는 했지만.

 

지인의 아빠는 이 영화를 "그냥 여자가 미쳐가는 이야기 아니냐?"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인은 굉장히 격분했다. 왜 미쳐갈 수밖에 없었는지 그 내면을 들여다봐야 하지 않냐면서.

 

글을 다시 써야겠다는 생각을 들게 해 준 영화다. 글을 쓰고 싶어졌다.

 주인공 지영은, 잘 나가는 커리어 우먼이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남편은 명절에 가지 말자고도 말해주고, 시댁에서도 집에 갈 짐을 싸는 등, 지영을 배려해주는 여러 모습을 보여 준다. 지영의 병에 대해서도 선뜻 말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것도 지영을 배려했기 때문일 거다. 다시 일을 나가겠다는 지영에게 "그럼 내가 육아휴직 쓸게."라고 말하며 자신의 승진과 창창한 미래를 접어둘 수도 있었던 사람이다.

 그럼에도 지영은 행복하지 못했다. 우리가 좋은 남자를 만난다고 행복할 수 있는 게 아님을 보여 준 영화다.

근본적인 문제는, 개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좋은 남편을 만난다고 해결되는 것도, 친정에서 시댁에서 도와준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지영에게는 살고 싶은 삶과 인생이 있었다. 결혼 생활을 훌륭하게 해내고 싶었고, 아이를 잘 키우고 싶었다. 그리고 자신의 일도 제대로 하고 싶었다. 그중에 그녀가 덜 비중 있게 생각한 것이 있었을까. 일을 아이보다 더 중요시했던 건 아니다. 세상에 어떤 엄마가 그럴 수 있을까. 베이비시터를 구하지 못했을 때 지영은 과감히 일을 포기하려고 했었다.

 

 삶의 목표가 많은 게 죄였을까? 그럼 우리는 모두 삶의 목표를 줄이고 살아야 하는 걸까?

아니다. 사람은 끊임없는 목표와 욕망을 가지고 살기 때문에 열심히 살 수 있고, 활력을 가지고 살 수 있다.

 그런데 지영은 왜 그렇게 되었을까. 그 남들 다 갖는 목표와 욕망마저 제대로 이룰 수 없는 현실의 한계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일을 하겠다는 욕망이 그렇게 큰 것일까? 대부분의 성인은 자신의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한다.

 아이를 키우겠다는 것이 그렇게 큰 욕망일까? 많은 사람들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운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까진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럼 아이를 키우면서 일을 하겠다는 욕망이 그렇게 큰 것일까? 남자들은 아이를 키우면서도 일을 한다. 그럼 여자들은? 요즘은 맞벌이 여자들도 그렇게 한다.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등 육아 복지가 잘 되어 있는 회사를 다니는 여자들은 말이다.

 그렇다면 지영은 왜? 지영이 다니던 직장은 경력단절이라는 벽이 높은 회사였다. 김 팀장이라는, 자신을 이해해주고 자신의 능력을 고평가 해주던 상사가 있었기에 복직이라는 희망을 잠시나마 품을 수 있었다. 물론 병 때문에 그마저도 절망이 되었지만. 그렇게 경력이 단절된 여성은 예정된 미래가 없다. 돌아갈 곳이 없다는 불확실한 삶이 가져다주는 절망이 어떤 것인지 나는 감히 상상하지 못한다. 아직 취업이 확정되지 않은 이 마음보다 불안감은 더 클 것이다. 나이도 많고, 단절된 경력을 채우기 위해 다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니까. 

 아직도 많은 시댁 어른들은,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 세대가 아무리 변해도 윗 세대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평생을 그게 옳다고 생각하고 살아온 사람들에게 당신들은 틀렸어요,라고 말하는 건 그 세대의 인생 전체가 부정당하는 것이라 쉽게 바뀔 수 없음도 안다. 결국 세대가 지나야 우리는 제대로 변할 수 있다. 이 남아있는 압박을 지영이 견뎌내고 있었다.

 

 아들만 대학에 보내던 시절을 견뎌냈던 엄마가 영화를 다 본 후 "외할아버지가 반대하더라도 직업을 가질 걸 그랬다."라고 말했다. 약사, 군인 등 많은 꿈을 가졌던 엄마가 그것을 포기한 채, 스스로를 잊은 채,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삶에 자신은 남아 있지 않았다. 내 삶에서 '나'가 사라진다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을 것이다. 나조차도 함부로 추측할 수 없다. 그저 타인으로 인해서만 존재하게 된다는 건. 삶을 놓아버리고 싶은 정도의 절망이 아닐까.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게 되는 건, 내 앞으로의 인생에서 내가 없어져 버린다는 건 살아야 할 이유를 잃는 게 아닐까. 우리는 타인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기 위해 살아가는 게 아니다.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살아가는 거다. 삶의 이유에는 타인이 아니라 '내'가 들어가 있어야 한다. 타인이 없어진다고 내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결국 아직 구시대적인 문화와 사회 구조를 비판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한다. 아이를 낳으라고 지원만 할 게 아니라, 우리가 아이를 왜 낳지 않는지 들여다봤으면 좋겠다. 육아에 돈이 많이 들어서? 아니다. 아이만 바라보고 살기가 싫어서, 내가 어릴 적에 품었던 나의 미래를, 지금도 꾸고 있는 꿈을 이루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기적인 게 아니라 인간으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목표를 가지고 살 뿐이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우리는 그 목표를 포기해야 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나의 아이를 당연히 사랑하겠지만, 나의 아이를 보는 건 당연히 행복하겠지만, 그것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가치는 결코 작지 않다. 그저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아이를 키우는 것보다 내가 사회에서 성공하는 게 더 좋을 뿐이다. 아이는 '내'가 아니고, 사회에서 살아가는 건 '나'이니까. 그것이 각 개인의 합리적인 선택이고 그 선택이 모여 사회 문제가 된 것뿐이다. 선진국에서는 어쩔 수 없이 일어날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왜 유난히 더 심할까? 그것은 우리의 부모님들이 우리에게 그들의 삶의 불행함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사랑 없이 아이 때문에 사는 모습도 많이 봐왔다. 우리의 부모님들이 보여 준 모습은 아이만 바라보고 사는 그런 삶이었다. 그런 삶을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삶을 우리에게도 당연하다는 듯 강요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게 그렇게 좋은 삶이면 행복해보여야 하는데, 우리의 부모님들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분명 그 삶이 더 행복한 사람도 있었을 텐데,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은 거다. 행복하지 않은 삶을 자식에게 강요하는 건 사랑이 아니다. 행복하지 않은 삶을 권장하는 국가도 국민을 위한 국가가 아니다. 인구문제만을 걱정하는 국가를 위한 국가다.

 

 처음으로 울었던 장면은 지영이 고등학생 시절 버스에서 내릴 때였다. 아빠에게 나와달라고 했지만 아직 아빠는 나오지 않았고, 두려움에 가득 찼던 그 순간, 버스에서 상황을 알아채고 뒤늦게 내려준 아줌마가 지영을 구했다. 그 순간에 두려움과, 안도감에 우는 지영의 모습에 함께 울었다. 아무리 사회가 평등해져도, 물리적 힘으로는 밀릴 수밖에 없는 약자라는 게 늘 두려움에 떨게 만든다. 아무리 사람들의 인식이 좋아져도, 여전히 그런 사람들이 남아있기에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뒤늦게 도착한 아빠가 지영이를 걱정하며 뛰어왔다. 하지만... 집에 가며 지영에게 한 말은 평생 상처로 남을 것이다. 이제 지영은 그런 일이 생겨도 아빠에게 말할 수 없게 된다. 아빠는 지영 탓을 할 테니까. 걱정이 된다고 해서 상대방의 마음에 비수를 꽂는 말을 해도 된다는 인식은 제발 버리자. 그 말에 담긴 의미가 그런 게 아니라고 변명할 것이 아니라, 담고 싶었던 의미를 제대로 표현하자. 아무 일 없어서 다행이라고, 매일 마중 나오겠다고. 그놈 또 나타나면 잡아다가 제대로 혼내주겠다고. 이 말이 너무나도 필요했던 지영이었을 거다. 그렇게 어려운 말도 아니다.

 

 지영이 그렇게 된 건 단지 결혼과 육아 생활이 힘들어서만이 아니다. 지영의 엄마가 말했듯, 어린 시절부터 쌓여온 차별적 대우로 인한 내적 압박과 스트레스 때문이다.

 

 지영이 다른 사람이 된다는 건, 지영을 포함한 주변인들의 억눌린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지영의 삶에 지영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영이 취업에 실패하고 또다시 비수가 꽂히는 말을 들을 때, 엄마가 통쾌하게 "나대! 막 나대!"라고 말하는 게 너무 좋았다. 나와 엄마는 그 장면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단순한 후기를 남기려고 했는데 쓰다 보니 조금 민감한 부분까지 건드린 것 같다. 내 주변에는 '비혼'을 외치는 사람이 많다. 나 또한 그중 하나이다. 내가 비혼을 외치는 이유는, 내 부모님의 결혼 생활이 전혀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나는 누군가와 같이 살만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혼자 있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고, 가족들과 있는 것조차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다. 수십 년을 다르게 살아온 사람과 맞춰가는 삶이 처음엔 사랑이라는 이유로 행복해도 결국엔 불행해질 것 같기 때문이다. 이기적이라고? 사람은 원래 이기적이다. 내 행복을 내가 챙기지 않으면 누가 챙기는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겪었는데 불행하면 되돌릴 수 있는 그런 간단한 일도 아니잖은가? 주변에서 비혼을 외치는 이유야 자세하게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비혼에 대한 생각이 더 강해졌다고 한다. 우리의 생각에는 그만한 이유가 나름대로 존재한다. 그 이유의 비중은 사람마다 다르다. 우리를 비판하기 이전에, 대체 왜 그러냐고 비난하기 이전에 그 이유와 이유의 무게를 먼저 들여다보아 주었으면 좋겠다. 사람의 가치관은 모두 다른 법이니까.

 

 영화를 보고 글을 다시 쓰게 된 건, 지영이 답답하고 화가 날 때 하는 일이 글을 쓰는 거였기 때문이다. 나 또한 화나거나 답답한 일이 생겨서 감정이 주체되지 않을 때는 글을 쓴다. 글을 쓰고 나면 신기하게도 마음이 평온해진다. 그 감정을 어딘가에 기록해두고 저장해두었기 때문에 감정을 내려둬도 된다는 느낌이 들어서인 것 같다. 

 

 

 

19.11.14 본인 작성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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